기아차 K5로 보수와 진보의 갈등 해소?
‘K5’는 기아자동차로는 기념비적인 모델입니다. 순수한 의미에서 처음으로 국내 중형차는 물론 전체 자동차판매 1위에 올랐기 때문이죠. 6월 한 달 동안 K5는 1만673대가 판매돼 지난해 10월부터 줄곧 선두를 차지했던 ‘쏘나타’(9957대)를 제쳤습니다. 지난달 단일 모델로 1만 대 이상 판매된 차종도 K5가 유일합니다. 1997년 8월 ‘크레도스’가 1만1472대로 1위에 올랐지만 당시 기아차가 부도위기에 처하면서 파격적으로 30% 할인판매를 단행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까. K5 2.4 GDI 모델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디자인으로 일단 기선제압
중형차 빅3는 K5와 쏘나타, 그리고 르노삼성자동차 ‘SM5’. 과거 이들 세 차종의 디자인이 다르긴 했지만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무난하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쏘나타를 시작으로 암묵적인 디자인 카르텔이 깨졌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혁신적인 쏘나타의 디자인이 공개되자 일부는 열광했지만 일부는 물음표를 달죠. 너무 튄다는 반응입니다.
반대로 올해 1월 공개된 SM5는 과거처럼 보수적인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쏘나타에 비해 한 세대 뒤처진 느낌이지만 의외로 국내 중형차 구매자들은 보수적인 성향도 강해서 월 6000~7000대가 팔리면서 선전(善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년 안에 이들 빅3 신차가 쏟아진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상태고, 마지막 나올 K5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대기수요층도 많았지요.
마침내 4월 발표된 K5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혁신과 진보의 절충안이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피터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의 디자인 철학인 ‘직선의 단순화’가 정확하게 적용된 모델로,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고 세련된 모습이 유럽 고급차의 분위기와도 닮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너무 앞서간다는 부담감도 없고 그렇다고 답답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합리적 보수와 진보’의 통합형이라고나 할까요. 변화하고 싶은 욕망이 강렬하면서도 은근히 보수적인 한국 국민의 성향을 절묘하게 파고든 셈이죠. 물론 디자인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성능에서 비슷비슷한 빅3 중형차의 경쟁에서 일단은 K5가 디자인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볼 수 있는데, 디자인이 판매 성공의 주역인 것이죠. 하지만 쏘나타의 디자인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데다 현대차가 강력한 마케팅에 나선 상황이어서 K5의 신차효과가 수그러들면 판매순위가 어떻게 바뀔지 쉽게 예측이 힘든 상황입니다.
●평범하고 부드러운 동력성능
K5는 쏘나타와 마찬가지로 165마력 2.0L 엔진과 201마력 2.4L 직분사 엔진이 두 축입니다. 차체의 크기를 감안할 때 2.0L 엔진은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힘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다이내믹하게 운전하려고 시도하면 바로 출력에 갈증이 느껴집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제로백’ 시간은 약 10초로 쏘나타와 거의 동일합니다. 같은 플랫폼에 같은 엔진과 변속기니 당연한 결과죠.
2.4L 직분사 엔진 모델은 제로백이 약 9초로 2.0L 모델보다 1초 정도가 빨랐습니다. 하지만 최고출력이 201마력인데 비해서는 밋밋해서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전체적으로 2.0L 보다 약간 가볍게 움직이는 느낌 정도. 스포티하게 운전할 때 2.0L는 부족하다면 2.4L는 덜 부족하다는 개념이지 힘이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는 출력보다는 연료소비효율에 더 신경을 썼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최고 출력은 201마력인지 몰라고 스로틀의 반응성이나 변속기의 기어비가 연비 위주라 숫자에 비해선 힘이 느껴지지 않는거죠.
그래서 2.0L와 2.4L 자동변속기 모델의 연비는 L당 13㎞로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시승하는 동안 2.4L 모델의 연비가 약간 더 높았습니다. 고속주행이나 탑승자를 많이 태우고 고갯길을 올라가는 가혹한 상황에서는 힘에 여유가 있는 2.4L가 연료를 덜 먹었습니다. 엔진음도 2.4L 모델이 더 조용하다. 베이스가 같은 엔진이지만 2.0L에는 소음과 진동을 줄여주는 ‘밸런스 샤프트 모듈’이 빠져서 그렇죠.
●부드러운 승차감과 약간 느슨한 핸들링
운전대를 돌릴 때 차가 얼마나 신속하게 반응을 하느냐를 나타내는 핸들링 성능은 쏘나타> K5 > SM5의 순입니다. 노면의 요철을 지날 때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하는 승차감은 그 반대겠죠.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승차감과 핸들링에서도 K5는 중용을 취하고 있습니다. 쏘나타는 운전대를 조작함과 동시에 차체가 따라오려는 반응성이 높습니다. 차의 앞머리가 코너를 파고드는 듯한 느낌도 예사롭지 않죠. 그런데 기아차의 준대형 모델인 ‘K7’가 상당히 스포티하게 나왔기 때문에 K5도 쏘나타보다 핸들링이 뛰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 반대로 나왔네요. 커브길을 얼마나 빠르게 돌아나갈 수 있는지를 뜻하는 코너링은 세 차종이 비슷비슷합니다.
결론을 내어보자면 쏘나타는 운전자 중심의 차라면 K5와 SM5는 가족 중심입니다. 운전자 입장에서 쏘나타를 몰면 제법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K5는 안정감이나 편안함은 있지만 무덤덤합니다. 그렇다고 두 차종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고 코카콜라냐 펩시콜라냐 정도로 보면 됩니다. 전체적인 소음차단 정도는 K5와 쏘나타가 비슷하고 SM5가 미세하게 앞섭니다. 빅3 중형차가 비슷한듯 하면서도 나름대로 3가지 스펙트럼으로 나뉘어져 국내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성능이나 디자인이 정말 개성없던 시절에 비하면 디자인과 핸들링 편의성 3가지 요소를 놓고 비교하면서 구입할 수 있게 된 지금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격도 그만큼 오른 점만 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