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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설기 한라산 특집ㅣ성판악~관음사 ]

j미르호 2011. 4. 23. 09:04

적설기 한라산 특집ㅣ성판악~관음사 르포]

 성판악~동릉정상~삼각봉~관음사 입구 18.3km 산행

 “벌써 보름째 날씨가 이래요. 폭설이 두 차례나 내렸고요. 1월 초 한라산에 이렇게 눈이 많았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주시내에 눈이 쌓인 건 정말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이젠 한라산 날씨를 종잡을 수 없네요.”

비행기가 제주도 상공에 접어들 무렵 한라산은 물론 제주는 섬 전체가 두터운 먹구름에 덮여 있었고,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접어들자 도로 곳곳이 눈으로 어수선했다. 산 위로 올라서면서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한라산 동측을 가로지르는 5·16도로는 엊저녁 쏟아진 폭설로 눈이 잔뜩 쌓여 있고, 성판악 주차장에 내려서자 눈보라는 고개를 똑바로 들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몰아쳤다. 동행한 제주 오현등고회 회원들은 “1월 날씨치곤 고약스럽다”며 한마디 했다. 그런데도 신년 산행 차 가벼운 복장으로 한라산을 찾은 모 기업 직원들은 활짝 핀 얼굴로 산행에 나섰다.


▲ 1 켜켜이 쌓인 눈이 자아내는 설경은 한라산만의 독특한 풍광이다. 취재팀이 괴이한 풍광의 설화 숲을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다. 동릉 정상~왕관봉. 2 삼라만상을 빨아들일 듯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백록담. 화구벽 동릉 정상에서 바라보았다. 1월 11일 촬영. 3 진달래밭을 등지고 동릉 정상을 오르는 등산인들. 평원처럼 널찍한 산사면에 불룩 솟아오른 사라오름(앞)과 성널오름이 조망의 멋을 한층 드높여준다. 1월 11일 촬영.
 
잔잔한 수채화 풍의 설경 보여주는 사라오름 전망대

산 안으로 들어서자 빼곡히 우거진 나무들은 속살이 비칠 만큼 얇은 눈옷을 입고 있다. 그러다 높이를 올릴수록 눈옷이 두꺼워지고, 해발 900m를 넘어서자 오버코트처럼 무거운 옷을 입고 있다. 설화숲을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도 각양각색. 너무 힘들었던지 찌푸리거나 화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동화와 점퍼 차림에도 콧노래 흥얼거리며 내려서는 소녀들과 중년 여인들도 눈에 띄었다. 하늘 표정은 가늠할 수 없다. 눈이 켜켜이 달라붙어 크리스마스 트리로 숲을 이룬 듯한 삼나무 숲을 지날 즈음 햇살이 쏟아지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짙은 먹구름이 밀려와 산을 집어삼키고 거센 바람이 산을 흔들어댄다.

까마귀 울음소리 들으며 속밭대피소(성판악 4.1km·사라오름 입구 1.7km)에 도착하자 많은 등산인들이 점심과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다. 진달래밭대피소까지 다녀온 사람들은 그나마 밝은 편이지만 백록담 동릉을 다녀온 사람들은 땀에 젖고 눈을 뒤집어쓴 채 사뭇 지친 표정이다. 2009년 여름 전까지만 해도 성판악 코스에는 진달래밭대피소 외에는 쉴 만한 공간이 없어 등산인들이 불편해했는데 이렇게 속밭대피소가 들어선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속밭’은 1970년대 녹화사업 때 제주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삼나무를 심은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어요. 동릉에서 용진각 쪽으로 눈이 많아 내려갈 수 없답니다.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동릉까지도 4시간이나 걸리고요. 천천히 사라오름이나 구경하시죠. 구름이 터지면 서귀포 쪽도 보이고 백록담 화구벽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사라오름 입구(성판악 5.8km·진달래밭대피소 1.3km)에서 기다리던 오현등고회 박철홍씨는 “백록담 화구벽 동릉 안내소 근무자와 전화 통화한 결과 동릉에서 삼각봉대피소에 이르는 구간에 산길이 나 있지 않다” 한다.

한라산 백록담 동면의 여러 오름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사라오름(紗羅岳·1,325m)은 개방된 지 이제 두어 달밖에 되지 않았다(2010년 11월 1일 개방). 제주의 330여 개 오름 중 예닐곱 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화구호(火口湖) 중에서도 가장 높이 위치해 있고, 예로부터 명당자리로 꼽혀 화구호 안에 묘를 쓰기도 했다. 때문에 지금도 날이 가물어 바닥이 드러나면 묘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가 훈련대인데 짐을 벗어놓고 갈 수야 있나. 어서들 배낭 메.”

올 여름 중국 신장성 위구르자치구의 보고타(5,445m) 한국 초등에 도전하는 오현등고회 원정대 등반대장인 박철홍씨는 후배인 정태문씨와 김홍업씨에게 “이것도 훈련”이라며 “배낭을 짊어진 채 사라오름을 다녀오자” 주문한다.

숲 우거진 짤막한 오르막을 올려치자 성판악 산길과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눈 덮인 화구호는 요정이라도 살고 있는 듯 신비롭고, 분화호 가장자리로 이어진 트레일을 따라 분화구 반대편 산릉에 올라서자 잔잔한 수채화풍의 산사면이 펼쳐졌다. 서귀포와 태평양 먼바다가 터지고, 한라산 정상인 부악(釜岳) 동면의 웅자(雄姿)를 드러내는 전망대이지만 아쉽게도 눈보라와 짙은 구름은 모든 기회를 앗아가고 말았다.

사라오름 입구를 지나면서 산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그런데도 하산객들의 표정은 밝고 입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곤 한다. 전형적인 엉덩이 썰매 코스. ‘다른 사람들 미끄러지지 않게 미끄럼 타지 말라’ 당부하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고, 등산인들은 저마다 조심조심하지만 일단 엉덩이 썰매 맛을 본 사람들은 내리막만 눈에 띄면 다리를 쭉 펴고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환호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숲이 벗겨지고 키 작은 진달래나무 군락이 나타나면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까마귀들은 한낮에는 주로 먹을거리가 많은 대피소 주변에서 머문다. 때문에 속밭대피소에 다가설 때와 마찬가지로 ‘깍깍’대는 소리가 들려오자 진달래밭대피소가 다가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헬프미 뽀빠이~. 헬프미”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할 즈음 허재성 기자가 살려 달라 소리친다. 대피소로 다가오는 일행을 촬영하려 등산로를 살짝 벗어났다 깊은 눈 속에 허리까지 빠져들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구조요청을 해댄다. 키 큰 김홍업씨가 다가가 손을 뻗쳐 주지만 커다란 배낭에 무거운 카메라를 멘 허재성 기자는 눈구덩이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진달래밭대피소는 입구 양쪽 벽이 3분의 2 이상 눈에 덮여 있다. 그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들은 분명 설인이었다. 잠시 쉬면서 허기진 배를 달래고 대피소 안에 텐트를 치는 사이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터진다. 겨울 한라산은 날씨가 나쁘더라도 오후 4~5시면 한 번은 구름이 벗겨져 준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서둘러, 서둘러. 내일 새벽에 그냥 지나칠 구간 사진을 지금 찍어야 해.”

급히 장비를 챙겨 대피소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미 오후 5시를 넘어선 시각. 마음은 동릉 너머 백록담에 꽂혀 있지만, 구름이 벗겨지면서 모습을 드러낸 햇살은 이미 노을빛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니, 이 시간에 어딜 가요?”

한라산국립공원 직원인 오희삼씨(항공대 OB)는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가슴에 매단 채 동릉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 다음날이 동릉 안내소 근무인 오씨는 열흘 이상 나쁜 날씨가 지속되다가 저녁 무렵 모처럼 하늘이 터지자 이튿날 멋진 일출을 기대하며 동릉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희삼씨와 헤어진 다음 서두른다고 했지만 사진 몇 컷 찍고 나니 어둠이 밀려오고, 어둠과 함께 밀려오는 강추위와 눈보라를 피해 다시 대피소로 쫓기듯 들어선다. 


▲ 두텁게 쌓인 눈이 설국을 연상케 하는 구 용진각대피소 가는 길. / 눈을 녹여 식수를 만드는 정태문씨. / 한라산지기 오희삼씨.
 
동릉 정상에 올라서자 멋진 풍광 대신 눈보라가 몰아쳐

칠흑 같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이튿날 멋진 설경을 기대케 했지만 새벽 4시를 넘어서자 산 아래서 몰려온 안개가 산정을 뒤덮고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친다. 어차피 눈보라 속이라면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 새벽밥 먹고 미적거리다 아침 6시40분경 대피소 문을 나선다.

겨울철 켜켜이 쌓인 눈으로 멋진 설경을 보여주던 동릉 등로는 거센 바람과 눈보라에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상산행이다.

“우와~,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네요.”

5년 전 비슷한 시기에 동릉을 오를 때 숲을 이룬 구상나무들은 저마다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두터이 눈을 인 채 이국적인 설경을 뽐내고, 부악 화구벽은 웅장한 풍광을 과시했다. 설경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지 밑으로 들어가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멋진 포즈를 취한 채 기념촬영했고, 동릉을 배경으로 촬영하고자 하는 이들은 제법 당당한 자세를 잡으며 카메라 앞에서 서곤 했다. 오늘은 눈보라가 5년 전 그 날의 풍광을 대신하며 모질게 불어댔다.

해발 1,600m 표석을 지나면서 나무가 서서히 사라지고 개활지가 펼쳐진다. 동릉 일대의 웅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곳이다. 위로 오를수록 바람에 날린 눈은 한쪽으로 쌓이면서 등산로 데크가 모습을 보이지만 이제는 얼음이 덮여 미끄럽고 데크를 조금만 벗어나면 두터운 눈에 푹 빠지는 바람에 애를 먹는다.

“야, 이게 뭐야. 33년 전이나 어쩜 이렇게 똑 같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잖아.”

동릉 정상에 올라서자 눈보라는 더욱 거세지고, 능선 너머 백록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못 들 만큼 모진 눈보라에 절절매다가 오희삼씨가 밤새 데워놓은 안내소 안으로 들어서자 아방궁에 들어선 기분. 그런데도 양효용씨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쉰다.
학창시절인 1978년, 이번 취재에 동행한 석상명·양효용씨와 함께 용산발 호남선 열차와 목포 발 여객선 타고 한라산행에 나섰던 기자는 당시 제주를 뒤흔든 태풍 속에 한라산행에 들어섰다가 구 용진각대피소에서 이틀 동안 꼼짝 못 하고 갇혀 지내야 했다. 그러다 식량이 떨어지자 폭우 속에 산행을 강행해 동릉을 거쳐 백록담에 내려섰건만 짙은 안개 속에 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도 비에 푹 젖은 옷차림으로 오돌오돌 떨며 찍은 사진은 각자의 앨범을 장식하고 있다. 이후 한라산을 여러 번 오르긴 했지만 이렇게 셋이 함께 오른 것은 33년 만이었다. 한데 구름안개는 시야를 차단시키고 눈보라는 얼굴을 들지 못하게 불어대니 서운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얼마나 좋아. 이렇게 셋이 또 한라산을 올랐으니 말이야.”

난롯가에 앉아 두런두런 옛 얘기를 나누며 혹시 하는 기대 속에 통제소에서 한 시간 가까이 머무르다가 “올 겨울 백록담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 차례밖에 없었다. 이 정도 바람으로는 날씨가 바뀌지 않는다”는 오희삼씨의 말에 마음을 접고 삼각봉대피소로 향했다. 관음사 코스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북면의 왕관릉~탐라계곡~개미등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동면의 성판악 코스에 비해 눈이 한층 많았다. 짙은 안개 속에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것은 기본이고, 자칫 균형을 잃으면 눈 속에 처박히기도 하지만 모두 즐겁기만 하다.

“아니,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오전 9시30분경, 눈보라 속에서 설인이 나타났다. 큼지막한 배낭에 겨울 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30대 초반의 산꾼이 홀로 올라왔다. 새벽 5시30분 관음사 입구를 출발했다니 4시간 만에 예까지 올라온 셈. 눈길이 나 있어도 쉽지 않을 텐데 삼각봉대피소 이후 러셀을 하면서 예까지 올라왔다니 대단한 준족이자 정말 산을 좋아하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이제 길이 뻥 뚫려 있을 것”이라는 자신만만한 얘기를 듣고 그와 헤어졌으나 한 사람 족적으로 뚫릴 적설량이 아니었다. 동릉을 향해 올라간 산꾼의 발자국은 한발 뗌과 동시에 눈보라에 묻혀 버려 또다시 새롭게 길을 내며 내려서야 했다.

화구벽과 장구목 능선, 그리고 제주시가지 조망이 일품인 왕관릉 조망대를 지나 급경사를 내려서자 용진각대피소 터. 용진각대피소는 1974년 세워진 이후 등산인들이 한라산을 오르다 기상이변을 만났을 때 유용한 대피 공간이자 히말라야 원정을 앞둔 산악인들이 베이스캠프 삼아 이용하던 오두막집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2007년 여름 태풍 나리 때 백록담 북벽에서 무너져 내린 돌덩이와 뒤섞인 급류가 뒤덮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생긴 게 삼각봉대피소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참 겁이 없었던 거야. 33년 전 대피소에서 이틀 동안 머물렀잖아. 그때 불어댄 게 나리 같은 태풍이었다면….”

용진각대피소 부근에 캠프를 설치한 훈련대들이 물을 뜨던 탐라계곡 상류에는 대형 현수교가 설치돼 있다. 이 역시 대피소가 사라진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다리를 건너서자 짤막한 오르막. 눈이 허벅지까지 차올라 제법 진을 짜내게 한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눈사태였다. 현수교를 건너선 이후 삼각봉대피소 직전 능선에 이르기까지 능선 사면은 눈사태 다발지역이다. 막판에 낙석방지용 철책을 2중으로 설치해 놓았지만 철책 위쪽이 급경사 벼랑을 이루고 있어 폭우 직후에는 수시로 살펴보게 되는 구간이다.

철책구간을 지나자 개미등 능선 위로 올라서고 곧 삼각봉대피소에 도착한다. 널찍한 대피소는 텅 비어 있었으나 라면을 끓이는 사이 밑에서 올라온 등산객들로 곧 어수선해진다.

“이제 다 끝난 거나 다름없어요. 두어 시간이면 관음사 코스 주차장까지 내려설 수 있으니까요.”

 


▲ 1 동릉 정상에서 구름안개가 연출하는 신비경을 바라본다. 1월 11일 촬영 2 동화 속 오두막집 같은 분위기의 진달래밭대피소. 3 눈을 뒤집어써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구상나무 숲길을 걷는 등산인들. 4 눈보라 몰아치는 동릉 정상 통제소. 5 사라오름 분화구 길을 걷는 취재팀. 6 동릉 정상에서 왕관봉으로 내려서는 등산인들. 멀리 제주시 일원이 바라보인다. 1월 11일 촬영
 
짙은 먹구름은 취재팀 토해내곤 대왕오름 집어삼켜

삼각봉대피소를 지나면서 숲은 수시로 변신한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눈을 살짝 묻힌 채 겨울을 춥게 나고, 상록수 나뭇가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몽땅 주워 담으려는 듯 눈을 듬뿍 묻힌 채 따뜻하게 겨울을 나고 있었다. 삼나무가 멋스럽다면 소나무는 고고하고 도도했다. 숲을 이룬 적송들은 많은 눈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 없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쭉쭉 자라고 있었다.

“너희들 어디서 왔니? 무거운 짐 메고 많이 왔는데.”

“저희끼리면 벌써 포기했을 거예요. 선생님들이 계시니까 여기까지 온 거예요.”

대피소에서 30분쯤 내려섰을까, 앳된 청소년들이 눈밭에 서서 간식을 먹고 있다. 동계 산행에 나선 서울 상문중학교 산악부원들이었다. 지도교사 4명과 함께 제주도를 찾은 14명의 산악부원들은 엊저녁 관음사 야영장에서 하룻밤 묵고 이날 아침부터 용진각대피소 터를 향해 오르는 중이었다. 고등학교에서도 희귀 동아리 취급을 받는 산악부가 중학교에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싶었다.

숲 우거진 능선 따라 이어지는 눈길은 우리를 오두막집으로 인도했다. 탐라계곡대피소였다. 탐라계곡이 물이 불었을 때 하산객들의 피난처로 만들어진 탐라계곡대피소는 콘크리트 건물이건만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깥 날씨가 그만큼 춥고 을씨년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급경사 눈길 따라 탐라계곡 다리로 건너선 다음 산길은 한결 순해졌다. 이제 운동화 차림의 연인들도 눈에 띄고, 한라산 동계 산행에 나선 초등학생 행렬도 나타난다. 천연석빙고였다는 구린굴을 지나 관음사 주차장에 내려서자 하산객을 기다리는 관광버스가 여러 대 세워져 있고, 제주시 행 손님을 맞기 위해 대기 중인 택시도 눈에 띈다.

“?자 옵서예(‘반갑습니다’라는 뜻). 제주시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택시를 타기 직전 뒤돌아서는 순간 산은 사라졌다. 짙은 먹구름은 한라산을 집어삼키고, 대신 우리를 토해 놓았다.
▲ 1 삼각봉 사면에 쌓인 깊은 눈을 헤치며 삼각봉대피소로 향하는 오현등고회 회원들. 2 구 용진각대피소 아래 현수교. 3 안내판이 대신한 용진각대피소 터. 4 무인대피소로 운영된는 탐라계곡대피소. 5 폭설 속에 한라산을 오르다 쉬고 있는 서울 상문중학교 산악부원들.

 

 

산행 길잡이 Guide


성판악서 출발, 관음사로 하산…9시간짜리 당일산행 코스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는 현재 개방돼 있는 한라산 탐방로를 따라 오를 수 있는 최고지점인 부악(釜岳) 동릉(약 19,20m)에 올라설 수 있는 코스로, 출발기점(주차장 기준 해발 680m)이 100m쯤 높고 경사가 완만한 성판악 코스로 동릉 정상까지 오른 다음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탐라계곡 최상류로 내려선 다음 개미등을 타고 관음사 주차장으로 하산한다.

다른 코스도 그렇듯이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는 겨울 적설기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특히 폭설 직후에는 접근도로가 통제될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고,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동릉 정상을 거쳐 삼각봉대피소로 이어지는 구간은 눈길이 사라져 하루이틀 통제되기 일쑤다. 게다가 날씨가 좋더라도 빙판이 지거나 강풍이 몰아쳐 등산인들을 곤욕스럽게 만들곤 한다. 따라서 눈길이 잘 나 있다 손치더라도 방풍보온의류를 철저히 갖추고 아이젠을 반드시 휴대하도록 한다.

매표소~동릉 정상 간 3분의 2 지점인 진달래밭대피소까지는 숲길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도중에 속밭대피소(성판악에서 4.1km)를 쉼터로 이용하고, 대피소에서 진달래밭대피소 방향으로 1.2km 떨어진 사라악약수에서 식수를 구한다. 사라악약수에서 0.5km 더 오르면 사라오름 입구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사라오름 전망대까지는 0.6km로 왕복 30분쯤 걸린다. 기생화산이 많은 제주 일원에서도 드문 화구호이며, 풍광과 조망이 멋진 곳이니 꼭 들르도록 한다.

사라오름 입구를 지나면서 나무가 점점 작아지다 진달래밭이 펼쳐지면서 산길 오른쪽에 아담한 산장이 보인다. 조난자 구조를 위해 공원 직원들이 매점을 운영하며 상주하는 진달래밭대피소다(성판악 기준 7.1km). 긴급상황이 아니면 숙박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진달래밭을 지나면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조금씩 경관이 트이고, 날씨가 좋으면 한라산 동쪽에 산재한 오름의 무리를 감상하면서 오를 수 있다. 진달래밭 이후 동릉 정상까지는 데크가 깔려 있으나 한겨울에는 데크 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인다. ‘해발 1,800m’ 표석을 지나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서면 동릉 정상이다. 백록담 분화구 안이 잘 내려다보이고 분화구 건너편의 정상이 바라보이는 지점이지만 변화무쌍한 한라산 날씨 상 기회가 많지는 않다.

관음사 코스는 한라산 북면의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백록담 북릉을 타고 왕관릉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르면 구 용진각대피소 터가 나타나고, 이어 탐라계곡을 가로지른 현수교가 나타난다. 다리 밑 계곡이나 다리 건너편 지계곡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계류를 건너면 거대한 삼각봉(1,695m) 급경사 절벽 밑으로 올라선다. 이곳부터 용진굴과 개미목 부근까지가 관음사 코스에서 경관이 가장 뛰어난 구간이다. 과거 여러 차례 눈사태 매몰사고가 일어났던 곳으로, 낙석방지 그물망이 설치돼 있다.

개미등 능선에 올라서면 곧 삼각봉대피소가 반겨준다. 이 대피소 역시 비상시에만 숙박이 가능하다. 대피소 이후로는 계속 완경사 내리막이다. 개미등이 끝맺는 탐라계곡대피소(삼각봉대피소에서 약 3.1km) 이후 탐라계곡을 건너 산죽밭 사잇길을 따르면 관음사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두 코스를 연계해 백록담을 오르는 산행은 한라산에서 가장 긴 코스다. 공원 내에 취사와 야영은 금지되어 있으니 도시락과 행동식, 식수 등을 충분히 준비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산행시간은 눈길이 나 있을 경우 9시간 정도 잡으면 여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은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기점별로 입산시각과 하산시각을 정해 놓았다. 동절기(11~2월) 입산은 각 기점에서 오전 6시 이후에 산행이 가능하고 진달래밭대피소는 12시, 동릉 정상은 오후 1시30분 이전에 통과해야 한다. 삼각봉대피소의 경우 동릉으로 향할 때 12시 이전에 도착해야 한다. 따라서 성판악을 출발해 관음사로 넘어가려면 오후 1시30분 안에 동릉에 올라서야 한다. 문의(지역번호 064) 성판악지소 725-9950, 관음사지소 756-9950.   
  

교통

제주시까지는 항공이나 선박을 이용해 접근한다. 저가항공의 경우 8만 원 안팎의 저렴한 비용으로 김포-제주 왕복권을 구입할 수 있다.

항공사 문의전화 및 홈페이지 △대한항공 1588-2001 kr.koreanair.com △아시아나 1588-8000 www.flyasiana.com △제주항공 1599-1500 www.jejuair.net △티웨이항공 1688-8686 www.twayair.com △진에어 1600-6200 www.jinair.com. △이스타항공 1544-0080 www.eastarjet.com.

여객선 문의전화 및 홈페이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제주항행) 1599-5985 dom.icferry.or.kr △부산항 연안여객터미널(제주항행) 051-400-3399 www.busanpa.com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제주항행) 061-240-6060 △완도항여객터미널(제주항행) 061-554-8000 △장흥 노력항(성산포항행) 061-867-6500 △제주항 여객선터미널 064-720-8520 △성산포항 여객선터미널 064-782-1025.

제주시→성판악
공항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인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15분 간격(06:00~21:30) 운행하는 5·16도로(제1횡단로) 경유 서귀포행 직행버스 이용. 요금 1,600원. 전화 1688-5300.

하산지점인 관음사주차장에서 노선버스를 타려면 2km 떨어진 제주대학교 근처까지 걸어가야 한다. 주차장 건너편 도로변에 택시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시내 1만5,000원, 공항 2만 원. 제주콜택시 064-757-0800.



숙식 (지역번호  064)

한라산국립공원은 관음사 야영장에 한해 야영이 허용된다. 취사장과 화장실이 갖춰 있으며, 야영 데크(50개소)도 있다. 야영장 이용료(텐트 1동당) 소형 3,000원 중형 4,500원 대형 6,000원. 주차료(승용차) 1,800원. 문의 관음사지소 756-9950.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기슭에 위치한 절물자연휴양림(721-7421)은 삼나무숲과 제주시 지정 제1호 약수터로 이름난 곳으로 산림휴양문화관과 숲속의 집 등 다양한 규모의 숙소가 조성돼 있다. 이용 전달 1일 오전 9시부터 홈페이지(jeolmul.jejusi.go.kr)를 통해 예약받는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 경차 1,000원, 중소형 2,000원, 대형 3,000원. 시설물이용료(비수기·주중/성수기·주말) 숲속의 집 4인실(5동) 3만 원/5만 원, 6인실(5동) 4만 원/7만 원, 8인실(4동) 6만 원/9만8,000원, 11인실(2실) 7만 원/11만 원. 산림휴양문화관 6인실(5실) 4만 원/7만 원, 8인실(5실) 6만 원/9만8,000원. 숲속수련장(20인용) 12만 원/18만 원. 숙소 이용자는 입장료와 주차료가 면제된다. 입실시간은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며 퇴실시간은 12시. 여느 휴양림과 달리 휴일이 없이 운영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포함해 제주도 일원에는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114제주민박(www.114jeju.com), 우리여행(www.woori-tour.com) 등 숙박관련 사이트 참조.



맛집 (지역번호  064)


▲ 제주 흑돼지고기
제주시 일원에는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는 식당이 많이 있다. 화로향돼지고기(724-4050)는 제주 흑돼지요리로 이름난 집이다. 흑돼지 오겹살 1인분 1만3,000원. 흰돼지 오겹살 1만1,000원, 목살 1만 원, 항정살 1만2,000원, 가브리살1만2,000원. 도라지식당(721-3142)은 제주 앞바다에서 잡아낸 은갈치를 호박과 배추와 함께 끓여낸 갈치국(9,000원)이 일품이다. 갈치조림 2인분 3만2,000원, 갈치구이 1인분(1점) 1만2,000원. 해물뚝배기 1만2,000원. 성게미역국 8,000원. 제복일식(724-2949)은 비교적 적당한 가격에 싱싱한 생선 맛을 볼 수 있는 생선요리집이다. 초밥 1만 원, 활어초밥 1만5,000원, 돔(몸통)지리 1만3,000원, 돔(머리)지리 1만5,000원, 회덮밥·매운탕·알탕 각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