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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흔적 위에 봄의 색이 번진다

j미르호 2012. 3. 8. 17:36

겨울의 흔적 위에 봄의 색이 번진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 때 내린 눈이 지리산에 핀 산수유꽃나무와 노랗고 하얀 색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 구례축제추진위 제공

3월의 산 ― 지리산 만복대 능선

봄맞이 산행을 어디로 갈까? 봄은 봄이지만 봄이 아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계절이다. 산 정상에는 겨우내 내렸던 눈이 그대로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산행지를 선택하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봄맞이 산행을 봄꽃과 산행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찾았다.

봄은 남녘의 꽃에서부터 시작한다. 꽃의 북상속도는 하루 평균 22㎞. 가을 단풍의 남하속도인 하루 25㎞와 비슷하다. 복수초 같은 야생화를 제외하고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은 매화로 알려져 있다. 매화는 2월부터 가장 남쪽인 전남 광양에서부터 피기 시작해서 하루 22㎞씩 위도와 고도를 높인다.

광양 매화마을의 매화꽃축제가 3월 중순 열린다. 이어 꽃망울을 터트리는 게 산수유다. 산수유축제는 3월 23일부터 사흘간 열리며, 지리산 남부자락을 온통 '봄의 색깔'인 노란색 천지로 물들인다. 활짝 핀 산수유꽃은 구례 산수유마을을 그림 같은 마을로 만든다. 지리산 남부 산수유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만복대 능선으로 향했다. 정령치~만복대~묘봉치~성삼재까지 약 8㎞에 이르는 코스다.

◇지리산 3대 주봉 한눈에

한국에서 차가 다닐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 중 하나인 정령치(鄭嶺峙·1172m).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삼한시대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 장군(鄭將軍)을 파견해서 지키게 했다고 해서 정 장군의 성을 따 정령치라 불렀다 한다.

정령치 가는 길은 역시 아직 한겨울이다. 노면이 눈에 덮여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의 안내로 겨우 갈 수 있었다. 만복대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나무계단으로 조성돼 있다. 계단 끝만 조금 보일 정도로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하지만 주변의 나무들은 새순을 피우기 위해 몽우리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여느 철쭉군락 못지않은 키 작은 철쭉들이 엄청난 군락을 이루고 있다. 5월쯤이면 화려한 향기 속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조릿대 군락도 연이어져 있다. 눈 덮인 가파른 오르막길을 겨우 한 걸음씩 옮겼다. 예상 시간보다 조금 늦은 1시간 남짓 걸려 만복대에 다다랐다. 만복대(1438m)엔 노고단에서 보던 돌탑이 우뚝 솟아 정상을 지키고 있다. 주변은 온통 키 작은 억새밭이다. 구례 토박이로 정년을 앞두고 있다는 공단 직원 노경원씨는 "심원마을 주민들이 정상 주변에 밭을 일구어 감자를 캐는 화전민 생활을 하면서 억새밭으로 변했다"며 "한때는 비비추와 개불알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으나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며 아쉬워했다. 실제로 주변에는 키 작은 나무들뿐이다.

만복대는 동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에 솟아 있는 노고단과 반야봉, 천왕봉 등 지리산 3대 주봉, 서쪽으로는 산수유마을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빼어난 곳이다. 정상에 서서 세 봉우리를 바라보는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 역시 지리산이다!

◇산수유마을

그러나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땅은 질퍽하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그대로 따스한 기운으로 서서히 녹고 있는 것이다. 등산화는 온통 진흙투성이다. 억새와 철쭉군락을 지나 묘봉치로 향했다. 노경원씨는 "산수유마을을 찾는 사람이 많아 묵은 길을 찾아내 지난해 산수유마을에서 묘봉치로 올라오는 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산수유마을까지 3㎞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만복대에서 묘봉치로 내려와 다시 고리봉(1248m)으로 올라가야 한다. 숨이 점점 가빠왔다. 눈길은 정상길보다 훨씬 더 힘들다. 지리산 온천지구가 발아래 내려다 보인다. 산수유마을과 당동마을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리산 온천지구는 케이블카를 놓는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목적지인 성삼재도 저만치 보인다. 이제부터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성삼재에서 출발한다면 제법 숨이 찰 것 같다. 박기연 지리산국립공원 남부사무소 소장은 "지리산 3대 주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능선은 아마 만복대 능선이 유일할 것"이라며 "북으로는 바래봉철쭉군락지까지, 동으로는 반야봉과 노고단까지 하루에 갈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가는 겨울과 오는 봄이 공존한 만복대 능선을 약 4시간 걸으며 지리산 주능선과 산수유마을을 내려다보는 기쁨을 만끽한 산행은 성삼재에 이르러 끝났다.


[여행수첩]
■ 요즘 대부분의 산들은 산불 방지기간으로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 산행할 때는 반드시 통제구간을 확인해야 한다. 만약 통제구간을 지나면 벌금 10만원을 내야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main.knps.or.kr)과 산림청 홈페이지(www.forest.go.kr)에서 통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지리산 개방구간은 성삼재~노고단 5.4㎞, 화엄사~연기암 또는 무넹기 구간, 정령치~바래봉~운봉 11.8㎞ 구간 등이다.

■ 승용차로는 경부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천안논산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어 새로 개통된 순천·완주 간 고속도로로 옮겨 가다 구례화엄사IC에서 빠져 성삼재로 가면 된다. 구례행 고속버스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오전 6시 10분 첫 출발하며, 하루 9차례 왕복운행 한다. 구례읍~성삼재까지 택시요금은 약 4만원. 개인택시 문의 011-631-1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