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ho/자동차

베라크루즈 시승기

j미르호 2008. 1. 19. 22:12
Hyundai Veracruz






























지난해 싼타페를 내놓을 때부터 현대의 SUV 만들기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일을 냈다. 당당한 체구에 240마력의 V6 3.0ℓ 디젤 엔진을 얹은 대형 SUV 베라크루즈는 테라칸 등 국산 동급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문득 해외 자동차 전문지에서 읽었던 테라칸에 대한 멘트가 떠오른다. ‘당신의 집이 알프스 중턱에 있다면 사라. 그러나 그 이외의 지역에서 살고 있다면 테라칸을 살 이유가 없다.’ 가슴을 시리게 한 평가였다. 하지만 베라크루즈라면 세계 어디를 가든 이런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세련된 디자인과 넉넉한 실내공간
베라크루즈는 일단 덩치가 크다. 길이×너비×높이 4천840×1천945×1천750mm로, 테라칸(4천710×1천860×1천795mm)이나 쌍용 렉스턴2(4천735×1천890×1천840mm)보다 크다. 길이와 높이가 모두 크지만 특히 차체가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이다. 앞모습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는 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굳이 분류하자면 도요타 4러너, 닛산 무라노, 혼다 파일럿 중에서 무라노에 가까운 늘씬한 모습이다. 옆에서는 싼타페 및 아반떼(HD)에서 선보인 물결무늬, 뒷모습에서는 아우디 Q7처럼 길쭉한 리어램프가 눈길을 끈다.
범퍼와 보디 아랫부분 그리고 휠하우스에 살짝 두른 언더 스키드 플레이트는 기능을 따지기 이전에 심심해 보이지 않게 하는 투톤컬러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HID 헤드램프와 LED 테일램프, 턴시그널 램프가 달린 사이드미러, 듀얼 머플러 등 요즘 유행에도 충실했다. 지붕 뒷부분에 달린 작은 안테나나 검게 처리한 리어 스포일러에서는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렉서스 RX350의 잔영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곡선을 살린 부드러운 모습.
유려한 곡선 이미지는 실내에도 이어진다. 실버 메탈릭과 우드그레인을 적절히 섞은 대시보드는 싼타페보다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센터페시아는 렉서스 RX350과 인피니티 FX를 버무린 듯하지만 패널이 더 깔끔하다. 다만 오디오와 공조장치의 푸른색 표시창은 시인성이 조금 떨어진다. 시트는 대형 SUV답게 넉넉하나 바닥이 넓지 않은 게 조금 의외다. 키 큰 사람이 앉으면 허벅지를 다 받치지 못할 정도. 대신 좌우 폭은 넉넉하다.
2열 시트 역시 넉넉하며 특히 등받이를 9단계로 꽤 많이 눕힐 수 있고, 슬라이딩 역시 10단계로 조절되어 3열에 승객이 타도 불편함이 없다. 2열 시트에서도 렉서스 RX350이 떠오른다. 센터 암레스트가 RX350의 그것을 쏙 빼닮은 것 아닌가. 현대차에서 도요타 혹은 여타 메이커(주로 일본)와 닮은꼴을 찾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키 170cm의 성인을 기준으로 설계한 3열 시트는 크게 불편하지 않다. 접었을 때 트렁크 바닥이 평평해지도록 설계하느라 완벽하게 편안하지는 않지만 제법 넉넉하다. 3열 승객의 키에 맞게 2열 시트를 앞으로 밀어도 2, 3열 모두 레그룸에 여유가 있다. 2열 시트 옆에 달린 레버를 당기면 한번에 등받이를 제치고 시트를 앞으로 슬라이딩시킬 수 있어 3열로 드나들기도 불편하지 않다. 2열 승객이 타고 내릴 때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B필러 아랫부분을 살짝 파 놓는 데서 제법 치밀해진 개발팀의 센스가 느껴진다.
3열 시트를 접으면 평평하고 넓은 짐공간이 만들어지며 3열 시트를 세우더라도 지프형 차의 숏보디 모델 정도의 공간이 있다. 시트가 크다 보니 2열 시트를 폴딩하더라도 완전히 평평해지지 않지만 짐 싣는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7명이 타든 한두 명이 타고 2, 3열에 짐을 가득 싣든 공간 여유는 충분하다.
럭셔리 SUV임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는 만큼 고급스러운 실내에 많은 편의장비를 갖추고 있다. 시승차인 300VX 럭셔리에는 없지만 윗급은 트렁크를 전동으로 여닫을 수 있는 장치가 달린다. 수동으로 해치를 닫을 때도 그리 힘이 들지는 않는다. 기본형 300ℓ를 제외한 모든 모델에 선명한 수퍼비전 클러스터 계기판이 달리고 앞뒤 도어에 LED 방식의 도어 커티시 램프도 마련되어 있다. 중간급 이상은 좌우 분리형 에어컨을 비롯해 뒷좌석용 송풍구(센터콘솔 뒷부분과 B필러, 지붕)와 온도 조절기, 그리고 고급형에는 8인치 모니터를 포함한 뒷좌석 전용 DVD 시스템까지 옵션으로 마련되어 럭셔리 SUV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룸램프가 2열 승객의 머리 위 한 곳에만 달린 것은 아쉽다. 실내가 넓어 룸램프를 켜도 앞좌석이 어둡다. 실내가 환한 요즘 차들를 감안할 때 오버헤드 콘솔에 룸램프를 하나쯤 더하는 것이 좋겠다. 기어를 P에서 D레인지로 옮기면 자동으로 풀리는 파킹 브레이크도 아쉽고, 무엇보다 운전석에만 오토 업다운 윈도가 달린 점이 의아스럽다. 나머지 윈도는 오토 다운도 안된다.

주체 못할 만큼 넘치는 출력과 토크
베라크루즈는 현대가 자체 개발한 V6 3.0ℓ 디젤 터보 커먼레일 S엔진을 얹고 있다. 최고출력 240마력/3천800rpm, 최대토크는 46.0kg·m/
1750∼3500rpm으로 국산 승용 디젤 엔진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한다. 최고출력 240마력은 같은 배기량의 디젤 엔진 BMW X3(218마력), 아우디 Q7(233마력), 폭스바겐 투아렉(225마력), 지프 그랜드 체로키(218마력)보다 높은 수치. 다만 베라크루즈의 최대토크(46.0kg·m)는 BMW X3(51.8), 아우디 Q7(51.0), 폭스바겐 투아렉(51.0), 지프 그랜드 체로키(52.0)보다 조금 떨어진다. 국산 첫 V6 디젤인 S엔진은 연료를 2천 기압으로 쏘는 피에조 커먼레일 연료분사시스템과 전자제어식 가변 터보(E-VGT)를 통해 이 같은 고출력을 뽑아낸다. 실린더 블록은 2천 기압을 견디는 고강도 특수주철(CGI)로, 꽤 높은 수준에 다다른 디젤 엔진이다.
아이들링 음은 비교적 조용하고 가속할 때도 정숙성은 떨어지지 않는다. 엔진음을 튜닝하기보다는 소음 자체를 억제하려 한 느낌. 시속 120km, 조금 더 올려 시속 140km를 넘어서면 들리는 것은 그야말로 바람소리뿐이다. 풍절음이 크게 부각되는 것은 회전수가 낮아 엔진음이 작게 들리는 디젤차의 공통된 특징으로, 바람을 받는 면적이 넓은 SUV에서는 더 잘 들릴 수밖에 없다.
시승차는 300VX 럭셔리 2WD로 값이 3천614만 원이다. 2WD라 4WD에 비해 가속이 경쾌하고 최고속에서도 조금 유리하다. 1천500rpm 이하의 초기 가속에서는 약간 굼뜨지만 터보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저돌적으로 박차고 나가는 강한 토크를 느낄 수 있다. 시승 당일 기록한 최고시속은 203∼204km. 안전을 위해 최고시속을 190km로 제한해 놓았으니 계기판 오차를 감안하면 이 수준까지는 손쉽게 가속할 수 있다.
계기판에 의존한 단수별 최고시속은 1단 4천rpm에서 약 40km, 2단 4천rpm에서 약 80km, 3단 4천100rpm에서 약 120km, 4단 4천100rpm에서 약 170km이고, 5단 3천700rpm, 6단 3천rpm에 이르면 시속 200km를 조금 넘긴 후 더 이상 속도계 바늘이 올라가지 않는다. 5단으로 시도하나 6단으로 시도하나 계기판의 숫자는 200km를 조금 넘기는데 그친다. 시속 100km로 정속주행할 때의 회전수는 6단 1천500rpm, 5단 1천900rpm, 4단 2천500rpm, 3단 3천500rpm. 최고시속으로 달릴 때도 회전수에 상당한 여유가 있어 리미터를 해제한다면 최고시속이 200km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듯. 다만 이런 고속을 내기 위해서는 서스펜션, 타이어 등을 종합적으로 다듬어야 할 것이고, SUV로는 더 이상의 속도가 위험할 수 있다.
베라크루즈는 아이신제 6단 AT 한 가지만 얹는다. 국산차로는 처음 얹은 6단 AT로, 변속기 오일 교환이 필요 없고 46.0kg·m의 큰 토크를 견디는 것이 특징이다. 기본기능 외에 ‘+’, ‘-’ 방식의 수동 기능을 더한 스텝게이트 방식으로, 변속시간이 짧고 충격도 거의 없다. 싼타페 등의 디젤 엔진과 조합된 여느 5단 AT와 달리 수동 변속시 기어를 고정하면 4천rpm을 조금 넘기더라도 바로 변속되지 않고 뜸을 들인다. 엔진 보호를 위해 사실상의 한계회전수인 4천rpm 이상으로 회전수가 잘 올라가지 않지만 그래도 쉽게 다음 단수로 기어를 바꾸지 않고 단수를 유지하는 것이 제법 기특하다. 그러나 엔진 브레이크를 걸 때는 여느 디젤 AT와 마찬가지로 4천rpm 이상에서는 아랫단수로의 변속되지 않는다.
앞 스트럿, 뒤 멀티링크인 서스펜션은 동급 렉스턴2보다 훨씬 단단하다. 급제동 때나 요철을 지날 때 차의 울컥거림(피칭)이 렉스턴2나 테라칸에 비해 확실하게 적다. 스티어링이 조금 가볍고 유격도 있으며 좌우의 움직임(롤링)도 적당히 느껴지지만 안정감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면 평소 SUV를 타지 않던 민감한 사람이라도 멀미를 느끼지는 않을 듯. 다만 코너에서는 앞바퀴로만 구동하는 2WD보다 4WD가 훨씬 유리할 듯. 앞바퀴로만 감당해야 하는 토크가 워낙 커 코너에서 가속할 경우 노면이 좋지 않으면 안정감이 떨어진다. 베라크루즈는 300VX 프리미어부터 전복방지 기능이 포함된 주행안정장치(VDC)를 기본으로 달기 때문에 전복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대로 내놓은 모노코크 대형 SUV
현대가 베라크루즈를 선보이면서 내세운 LUV(Luxury Utility Vehicle)에 대해 말이 많다. ‘럭셔리’라는 한 가지 잣대로만 보면 베라크루즈는 부족한 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LUV를 그저 국내 마케팅팀이 사용하는 하나의 광고문구로 치부하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럭셔리를 좋아해 갖다붙인 것이라고.
베라크루즈는 변화의 기로에 선 현대가 요즘 잇따라 내놓고 있는 품질 좋은 쏘나타(NF), 그랜저(TG), 싼타페의 맥을 잘 잇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모노코크 보디의 제대로 된 대형 SUV가 없었던 현대는 이제 베라크루즈로 이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시장에서 베라크루즈가 내세울 가치는 럭셔리가 아니라 매력적인 스타일과 성능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통용될 수 있는 품질일 것이다. 값이 많이 비싸도 그만큼의 값어치를 할 때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깝지 않다. 그동안 호화장비로 차격을 인위적으로 높이려 했던 메이커들의 상술에 당할 만큼 당했지만 이번에는 제값을 하는 차가 나온 것 같아 반갑다.
베라크루즈는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 이곳 저곳에 벤치마킹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현대가 만든 조금 웃긴(?) TV CF처럼 만일 해외 유수 메이커들이 베라크루즈를 보고 긴장한다면 그것은 지금의 베라크루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의 놀라운 발전속도 그리고 다음번에 내놓을 더 나은 모델에 대한 경계심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베라크루즈의 경쟁모델
베라크루즈는 X와 VX, VXL로 나뉜다. 외관상 큰 차이는 없으나 VX부터 HID 헤드램프와 LED 리어램프, 후방센서 등이 달린다. 값은 2WD가 3천180만∼4천84만 원, 4WD는 2WD보다 190만 원 비싼 3천370만∼4천274만 원이다. 최고급형인 4WD 300VXL(4천274만 원)에 사이드스텝, DVD 내비게이션 및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더한 풀옵션 모델이 4천793만 원으로 웬만한 수입 SUV에 버금간다. 동급 쌍용 렉스턴2의 경우 2WD 2천883만∼3천72만 원, 4WD가 3천244만∼4천114만 원이며, 노블레스 최고급형(4천114만 원)에 DVD 시스템 및 3D 내비게이션, 지상파 DMB 등을 더한 풀옵션 모델은 4천771만 원으로 베라크루즈와 큰 차이가 없다.
수입차와 비교하면 차급이 훨씬 작은 혼다 CR-V(3천90만 원, 3천490만 원)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싸고, 지프 체로키 2.8 CRD(4천490만 원), 지프 그랜드 체로키 3.0 CRD(5천790만 원)보다는 조금 싸다. 물론 벤치마킹의 집중대상이 되었던 렉서스 RX350(6천960만 원)나 폭스바겐 투아렉 V6(7천470만 원), 볼보 XC90 D5(6천630만 원) 등 고급 SUV보다는 훨씬 싸다.

해외 경쟁차종과 참고 모델
베라크루즈는 국내에서 3.0ℓ 디젤 한 가지만 얹지만 북미에서는 V6 3.8ℓ 람다 엔진이 주력이다. 유럽에서는 휘발유와 디젤 모두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시장인 북미에서의 경우 실질적인 경쟁차는 닛산 무라노, 도요타 4러너, 혼다 파일럿이 될 것이며, 값도 이들 수준을 넘지 않는 전망. 베라크루즈가 벤치마킹한 렉서스 RX350 등 프리미엄 SUV보다는 훨씬 아래에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 카테고리 1(2만7천∼3만6천 달)
닛산 무라노
도요타 4러너
혼다 파일럿

■ 카테고리 2(3만7천∼6만8천 달러)
VW 투아렉
렉서스 RX350
인피니티 FX35

Editor’s Comment
조금 주춤해진 국산 대형 SUV 시장에 다시 불을 지필 충분한 자질이 갖추고 있다. 2WD V6 3.0ℓ 240마력 디젤 엔진은 어느 순간에서도 차를 저돌적으로 이끈다. 토크가 워낙 크다 보니 190만 원을 더 지불하더라도 구동력을 네바퀴에 분산시킬 수 있는 4WD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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