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에서 사상 첫 우승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야구가 역시 금메달 감인 촌철살인 유행어로 팬들의 얼굴을 미소짓게 했다.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대회답게 팬들에 회자되는 '말의 축제'였다. 야구 해설의 대가 허구연 해설위원은 '허구연 어록'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팬들은 한기주와 호시노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졸지에 '브로커'가 됐고, 노메달의 일본은 대신 '번외 메달'로 아픈 가슴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일본말인가? 대쓰요'
허구연 MBC 해설위원이 '본의 아니게' 히트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사투리가 이럴 땐 오히려 득이 됐다. 일본과의 준결승전과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적시타로 주자가 홈을 밟을 때마다 "대쓰요(됐어요)"를 목청껏 외친 것이 팬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경남 진주 출신인 허 위원이 흥분한 나머지 경상도 발음을 감추지 못한 것. 이후 '대쓰요'는 온라인상에서 올림픽을 장식한 '허구연 어록'으로 명명됐다.
▶병역 브로커 이승엽
마지막 올림픽에 출전한 이승엽은 '국민타자'라는 명예로운 호칭 이외에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얻었다. 인터뷰 때마다 지극한 후배 사랑을 표현했던 이승엽은 타율 1할대의 극심한 부진 속에서도 고비마다 한 방을 날려 제 몫을 톡톡히 했다. 특히 14명의 병역 혜택 여부를 결정짓는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2-2로 팽팽히 맞선 8회 역전 투런홈런을 날리며 승리를 결정지어 그라운드를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시드니올림픽 동메달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이어 또다시 올림픽 금메달의 결정적 주역이 되자 팬들은 온라인게시판에 '이승엽이 수차례 후배들의 병역 면제를 사주했다', '마지막 타석에서야 입금이 확인돼 홈런을 날렸다'며 계좌조사를 포함한 검찰의 수사 촉구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등 포복절도할 농담들을 올리기도 했다.
▶금메달 한국, 목매달 일본
비록 3~4위전에서 미국에 패하긴 했지만 일본도 메달을 획득했다. 바로 팬들이 선사한 '목매달'. 예상외로 최악의 결과에 목이라도 매달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는 뜻으로 풍자한 말이다. 올스타로 구성돼 아시아 최초의 금메달을 호언장담했던 일본이 한국과 미국에 두 번씩이나 완패하며 고개를 숙이자 일본 내에서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목매달'이란 말을 제일 먼저 만들어낸 것은 한국팬들이었지만 일본 네티즌들도 '목매달'을 퍼날랐고, '불쾌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성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야구의 2대 신?
팬들은 베이징올림픽의 5대 신을 탄생시켰다. 그 5명의 신 중에 2명이 야구에서 나왔다.
수영 8관왕 마이클 펠프스(미국)는 '물의 신', 육상 남자 100m와 200m, 400m 계주에서 연거푸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우사인 볼트(자메이카)는 '바람의 신',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는 '하늘의 신'이다. 여기에 야구에서 '불의 신' 한기주와 비속어인 'X신'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호시노 일본팀 감독이 추가됐다.
대표팀 마무리로 잔뜩 기대를 모았던 한기주는 등판하는 경기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드는 놀라운 재주로 불을 지른다고 해서 '불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여유있는 승리가 예상됐던 대만전(18일)에서도 동점을 허용해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또 대회 시작 전부터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팬들의 집중 포화를 받았던 호시노 감독은 일본 최고 스타플레이어들로만 구성된 드림팀을 이끌고도 최악의 성적을 내 팬들의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