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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과 상주를 잇는 25번 국도를 오갈 때 인공위성지구국이 있는 적암리(보은군 미로면)를 지나면서 동쪽으로 병풍처럼 솟아있는 기암괴봉의 산을 올려다보게 된다. 아름답고 웅장한 산이어서 산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먼저 그 산의 이름을 궁금해 하고 다음에는 그 산에 올라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된다.
기암괴봉의 그 아름다운 산이 구병산이다. 구병산(九屛山)이란 아홉 폭 병풍의 산이란 뜻이다. 흔히 병풍에는 경치 좋은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경관을 병풍의 그림에 빗대어 찬미하는 경우가 많다. 봉우리가 아홉 개여서 옛날에는 구봉산이라 하기도 했다.
- ▲ 절터 위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구병산의 기암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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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산은 그야말로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진 바위등성이 1.5km가 아름답고 아기자기하며 아찔하고 시원하고 멋이 있다. 이러한 꾸밈말로도 그 멋과 아름다움을 모두 나타낼 수 없다. 잇달아 펼쳐지는 바위봉우리들이 소나무들과 어울려 그 모두가 그림이며 선경 같다. 가을에 기암괴봉들이 단풍과 어울리면 구병산은 더욱 아름답다.
구병산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신비스러운 풍혈도 있고, 쌀이 나왔다는 쌀난바위도 있다. 정수암 옹달샘의 전설은 참으로 재미있다. 적암리 휴게소에 있는 풍혈 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이 풍혈이 고스락에서 구병마을쪽으로 30m 아래에 있으며, 여름에는 찬 바람,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는 것이다. 지름 1m 풍혈이 1개, 지름 30cm 풍혈이 3개이며, 진안의 대두산 풍혈, 울릉도 도동 풍혈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풍혈이라 한다.
- ▲ 등성이에 올라서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스무골에서 문바위 일대는 비경이다. 이곳은 바위협곡을 이루고 있고 낭떠러지여서 쇠사다리가 걸쳐져있다. 쌀난바위는 문바위 아래에 있는 것으로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크기의 얕은 바위굴 안에 큰 목침이 드나들 만큼 꽤 깊은 작은 구멍이 있다. 이 구멍에서 나오는 쌀로 밥을 지어먹으며 도인들이 수도했다 한다. 쌀이 나왔다는 굴 위쪽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더 큰 굴이 있고, 이들 굴 앞에는 사람들이 머문 것 같은 몇 간의 흙담이 있다.
절골의 정수암 옹달샘에는 잘 다듬은 꽤 넓은 돌판(사방 50cm)에 재미있는 전설이 적혀있다. 여기 옹달샘의 물을 마신 정수암 스님들은 정욕을 주체할 수 없어 여섯 달을 넘기지 못하고 암자를 떠났으며, 이 옹달샘의 물을 한 모금 마시면 수명이 7일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허황된 이야기지만 재미있는 내용이다.
- ▲ 고스락에서 본 853m봉과 신선봉(왼쪽). 고스락에서의 환호(오늘쪽).
- 구병산은 호서의 소금강인 속리산에서 뻗어나와 보은(충북)과 상주(경북) 경계 근처에 솟아있다. 옛날부터 구병산은 보은현 삼산(三山)의 하나로 불렀다. 속리산의 천황봉을 지아비산(父山), 구병산을 지어미산(婦山), 삼승면의 금적산(金積山)을 아들산(子山)이라 했다. 구병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끝에 유난히 뾰족하게 솟아 오른 시루봉(421m)도 명물이다. 이 시루봉은 적암 마을 바로 옆 길가에 있다.
보은 고을은 풍수지리설과 관련해 사증(四甑·네 시루봉)과 팔항(八項·여덟 목)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충북과 경북 경계, 큰길가에 있는 적암리 시루봉도 보은의 네 시루봉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또 산행 들머리 끝자리가 되는 국도변의 적암리 마을은 일명 사기막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중봉 조헌의 문인인 포제 이명백이 의병을 일으켜 사기(士氣)를 크게 높인 데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라 한다.
속리산 상학봉에서 천황봉을 거쳐 형제봉 구병산을 잇는 산줄기 43.9km를 충북 알프스라 부른다. 요사이 산줄기를 종주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 ▲ 바위협곡을 이룬 문바위 쇠사다리를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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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암휴게소에서 시작하고 끝낸 산행
가을이 익어가는 10월 중순, 한지산악회(회장 정연권) 회원들이 구병산 산행에 나섰다. 이 산악회는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들이 만든 산악회로서 회원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로 뜻있고 즐거운 산악회가 되어 있다. 한지산악회가 잘 되고 있는 것은 김세정 동문회 사무처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활동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무실까지 가지고 있는 한지산악회는 산행회비도 적고, 매번 아침밥과 뒤풀이 음식도 주며 기념품도 준다.
적암휴게소를 나선 일행 40여 명은 사기막 마을을 지나 절골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사기막 마을은 감나무가 무척 많았다. 가을이 깊어져 감이 빨갛게 되면 온 골짜기가 빨갛게 될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여 15분쯤 되어 길은 개울을 떠나 왼편 산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저 위로 오르기만 하기를 30분쯤 되어 정수암터에 닿았다. 석축 아래 색색의 바가지가 매달려 있는 옹달샘이 있고, 왼편에는 전설을 소개한 석판이 있다.
- ▲ 단풍 아래 바위길.
- 절터에서 갈라져나간 왼편 길로 들어서면 853m봉을 거치지 않고 주능선에 올라서며 20분 정도 시간이 준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오른편 길로 들어섰다. 절터에서부터 비탈은 더욱 가팔라져 밧줄이 매인 곳도 있다.
절터에서 45분 걸려 주능선에 올라섰다. 여기는 충북알프스 마루금의 한 지점이기도 하고, 북쪽 주봉으로 이어진 약 1.5km의 아름다우나 험한 바위등성이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기암괴봉이 소나무 또는 단풍과 어우러져 있고,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고 있어 무척 아름답고 조망도 좋다. 그러나 이 바위등성이를 타기는 쉽지 않다. 주봉까지 853m봉 등 3개의 까다로운 바위봉우리와 바위등성이를 타고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853m봉에는 아예 위험하니 돌아가라는 경고문이 세워져 있다. 일행 대부분은 아래로 도는 쉬운 길을 택했다. 그러나 853m봉의 동쪽 아래를 도는 이 길도 꽤 어렵다. 853m봉처럼 바윗길이 어려워 동쪽 아래로 돌아가는 봉우리가 하나 더 있다.
스무골 하산길은 주봉의 바로 아래 잘록이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고스락에 올라 사진을 찍는 등 잠시 머물렀다. 이 날 조망은 좋지 않았다. 적암휴게소에서 고스락까지 3시간이 걸렸다.
- ▲ 쌀 난 바위(왼쪽). 정수암터 옹달샘, 스님들이 여섯 달을 못 넘기고 떠났다는 이야기와 한 모금을 마시면 수명이 7일 더 길어진다는 전설이 석판에 새겨 있다(오른쪽).
- 우리는 하산길이 시작하는 잘록이로 내려와 점심을 먹었다. 스무골은 매우 가파르다. 더구나 자갈길이어서 조심해야한다. 너무 가팔라서 길은 ㄹ자로 되어 있다. 이 스무골에서 가장 좋은 명소인 문바위 일대까지 잘록이에서 30분이 걸렸다. 문바위는 대문처럼 바위협곡으로 되어 있고, 오른편 바위는 매우 우람하며 엄청난 벼랑을 이루고 있다.
이 바위가 쌀난바위고, 그 아래에 쌀이 나왔다는 굴과 구멍이 있다. 크고 작은 두 굴 앞에는 황토에 돌을 섞어 쌓은 토담이 서너 칸으로 있다. 도인이 수도한 흔적이 아닌가 싶었다.
스무골 골짜기를 벗어나 왼편으로 산자락을 돌아가면 통신위성지구국 울타리를 돌아 사기막 마을의 개울가에 내려선다. 마을 삼거리 정자에 감식초와 오디술 등을 파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시루봉의 우뚝한 모습을 보다 뒤돌아보면 구병산의 멋있는 기암괴봉들이 올려다 보인다. 하산하는 데 1시간30분이 걸렸다. 그래서 총 산행시간은 4시간30분이 된 셈이다.
- ▲ 구병산 개념도 / 구병산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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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산길은 시작과 끝이 모두 26번 국도(상주-보은)변에 있는 적암리의 휴게소가 된다. 휴게소로 되돌아오는 산길 도중에 갈림길이 두 군데 있으나 두 길 모두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전에 다시 합친다.
○절골(소골)길 가) 적암휴게소~개울가 삼거리~(오른편)~정수암 약수터(절터)~(오른편)~주능선 853m봉 남쪽 잘록이~853m봉~853m봉 북쪽 삼거리(잘록이)~고스락 삼거리(잘록이)~고스락 <약 3시간 소요>
○절골(소골)길 나)정수암 약수터~(왼편)~853m봉 북쪽 삼거리(잘록이) <절터에서 삼거리까지 약 50분 소요>
○스무골(위성지구국)길 가) 적암휴게소~개울가 삼거리~(왼편)~위성지국~스무골(문바위 안) 삼거리~(오른편)~쌀난바위~고스락 삼거리~고스락 <약 2시간 소요>
○스무골길 나)스무골 삼거리~(왼편 등성이)~고스락. 길이 애매하고 험해 이용자가 거의 없다. <약 2시간 소요>
보통 절골길 가)로 올라 스무골길 가)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스무골길 나)는 애매하고 험하다. 절골길 가)로 올라 스무골길 가)로 내려올 경우 약 4시간에서 4시간30분 소요되고, 절골길 나)로 오를 경우 약 4시간10분 정도 걸린다.
교통
구병산을 찾아가려면 보은이나 상주를 거점으로 해야 한다. 영남 남부지방에서는 상주를 거치는 것이 좋지만, 기타 지역에서는 보은을 거치는 것이 편리하다. 보은~상주 사이를 약 40분 간격으로 직행버스가 다니고 있다. 적암휴게소에서 내려 바로 산행할 수 있다. 보은에서 화령(상주시 화남면) 사이를 40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왕복하고 있다.
승용차나 관광버스도 보은이나 상주를 거쳐 25번 국도를 이용해 적암으로 가면 된다. 옥천을 거칠 경우에는 안내(옥천군)에서 502번 지방도를 타면 보은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마로면 사무소 가까이에서 25번 국도로 들어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