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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야구기자 대담, “아시아 야구의 길을 묻다”
한·일 야구기자 대담, “아시아 야구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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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뜨거운 열전의 현장에 한국과 일본의 기자도 있었다. 박동희와 기무라 코우이치다. 두 기자는 WBC 1라운드가 열린 도쿄돔에서 그리고 숙소인 도쿄돔 호텔에서 수차례 만나 야구담론을 나눴다. WBC와 두 나라 야구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아시아 야구의 미래가 주된 화제였다.
이제 두 기자가 나눴던 대화를 가감 없이 두 나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이유는 간명하다. 두 기자의 대화가 곧 두 나라 야구팬의 공통화제이기 때문이다.
3월 5일 일본 도쿄돔에서 개막된 제 2회 WBC 아시아라운드의 식전행사(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안녕하세요. 기무라 코우이치 씨. 반갑습니다. 그간 안녕을 빌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박동희 씨. 반갑습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자, 여기 앉으시지요.
도쿄돔 호텔로 오는 길에 신문가판대를 봤습니다. 신문마다 온통 어제 한·일전 이야기로 장식을 해놨더군요. 3월 7일 한국이 일본에 콜드게임패를 당했을 땐 신문가판대 쪽으로 고개도 돌리기 부담스러웠는데요. 어제 한국이 일본에 1-0으로 이기니까 오늘은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가더군요(웃음).
그게 다 야구기자의 운명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이중적인 매력일 수도 있겠지요(웃음).
WBC 아시아라운드, 김광현의 투구가 의미하는 것
아무쪼록 기무라 씨와의 대담이 한·일 두 나라에게 상대 야구와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긍정적인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 먼저 WBC 1라운드를 돌아봤으면 하는데요. 지난 7일 승자전 경기에선 한국이 일본에 2-14 대패를 했습니다. 많은 야구전문가들이 “한국 선발 김광현이 일본야구에 철저히 분석된 결과”라고 지적했는데요. 한편에선 “김광현의 제구가 나빴을 뿐”이라며 가볍게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기무라 씨 생각은 어떠신지요.
후자라 할 수 있지요. 김광현의 제구가 좋지 않았습니다. 속구와 변화구 모두 그랬어요. 여기다 이른바 공끝이 전혀 살아있지 않았어요. 좋은 예가 1회 스즈키 이치로에게 맞은 우익수 앞 안타입니다. 당시 구종을 두고 일본 기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커브일까, 슬라이더일까’ 의견이 분분했어요.
이치로에게 맞은 안타가 ‘커브냐, 슬라이더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있나요.
(고개를 끄덕이며)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구종이 아니었다는 건 그만큼 공의 변화가 애매했다는 뜻이겠지요. 네, 그랬습니다. 일본은 김광현의 구종 가운데 슬라이더가 그의 주무기라는 걸 데이터를 통해 충분히 파악한 상태였어요. 대비책 역시 마련해뒀지요. 그런데 이날 김광현의 투구는 그런 대비책을 쓸 필요가 없을 만큼 실망스런 투구였습니다.
![]() 3월 7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한-일전. 투수 김광현과 타자 이치로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저 역시 동감합니다. 일본이 김광현을 충분히 대비했지만 그날 투구는 일본이 대비한 그 김광현이 아니었단 생각입니다. 일본의 연구와 함께 김광현 스스로 무너진 탓이 큽니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단 생각입니다.
이번엔 제가 박동희 씨께 묻겠습니다. 첫 경기에서 일본에 2-14로 진 한국이 순위결정전에선 1-0으로 일본에 승리를 거뒀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점수 차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글쎄요. 2-14가 정상적인 한·일간의 점수 차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2-5가 됐을 때 한국코칭스태프에서 승부수를 던졌다고 봅니다.
(가늘게 눈을 뜨며)승부수를 던졌다라.
그렇지요. 김인식 감독이 김광현을 2-5 상황에서도 계속 마운드에 있게 한 건 ‘오늘 경기를 꼭 잡겠다’는 의지보다는 ‘다음 경기를 준비하자’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5-2 상황에서 한국이 경기를 포기했다는 뜻인가요.
2-5에서 승리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면 김광현을 교체했을 겁니다. 정통적으로 한·일전은 1, 2점 차 승부에요. 3점 이상 허용하면 경기가 어렵게 됩니다. 김 감독도 모를 리 없었을 겁니다. 제 생각엔 ‘여기서 김광현을 어중간하게 빼 불펜을 소비하느니 김광현으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는 게 김 감독의 의중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게 투구수 제한이 있는 WBC에선 일단 투수들을 아끼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요? 전 한국이 5-2 상황에서 경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8-2에서 포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박동희 씨는 5-2에서 경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포기라, 글쎄요.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2-5 상황에서, 한국에게 승리에 대한 강한 집착이 없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차라리 투수를 아껴 다음 경기를 대비하자는 생각이 강했을 거예요. 그래서 김광현을 2-8이 될 때까지 밀어붙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 당시나 지금이나 한국 코칭스태프의 판단이 옳았다고 봅니다.
일리가 있네요. 흥미로운 분석인데요. 김 감독이 만약 ‘김광현을 좀 더 밀고 가자’는 생각으로 8-2 상황까지 그를 놔뒀다면 다분히 일본 감독적인 사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개 일본 감독들은 ‘선수를 기용하는 건 그 선수의 역량을 충분히 평가한 뒤 내린 결정이다. 따라서 눈앞의 내용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을 해요. 중요한 대회일수록 일본 감독들은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래서 일본이 국제대회에서 자주 쓴잔을 마시는지 몰라요.
기무라 씨 생각은 지나친 고집이 오히려 국제대회에선 마이너스가 된다는 지적 같은데요.
그래요. 페넌트레이스 때는 감독이 고집을 부려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지더라도 그 선수가 내일 혹은 다음 기회에 잘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국제대회는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 없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김 감독이 김광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단순히 ‘믿는다’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김광현. 져도 좋아. 여기까지만 던져”하는 감정이었을 거예요. 이 말은 믿음보다는 책임감을 심어주는 것과 가깝습니다.
14-2의 큰 점수 차가 난 경기에서 ‘12점 차로 일본이 승리했다’ 혹은 ‘12점 차로 한국이 패배했다’는 별 의미가 없는 말 같습니다. 다만 보다 엄밀하게 따져 봤을 때 한국이 8-2 상황에서 경기를 포기했는지, 아니면 5-2에서 경기를 포기했는지는 한 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두 관점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교를 하면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가령 SK 김성근 감독님과 같은 스타일의 지도자였다면 분명 1회 3실점했을 때 김광현을 바꿨을지 모릅니다.
감독마다 성향이 다르겠지요.
(고개를 끄덕이며)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계속 던지게 했습니다. 야구에 대해 잘 아는 분이라면 무라타의 3점 홈런으로 8-2가 됐을 때 이미 ‘이 경기는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여기에 큰 볼거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대개의 일본 스포츠 기자들은 김광현이 ‘한국의 에이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류현진은 김광현보다 실력이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물론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그래서 많은 일본 기자들이 7일 한-일전 선발로 김광현이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김광현이 8실점 할 때까지 버틴 것도 에이스의 자존심쯤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동희 씨의 말을 듣자니 한국은 ‘설령 김광현이 에이스일지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2회, 아니 1회라도 교체할 수 있다. 이건 전혀 이상할 게 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군요. 일본 스포츠 기자들로선 이 부분이 의외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삼아 말씀드리자면 가뜩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관심이 집중되며 김광현이 무너진 게 아닌가 봅니다. 주변 환경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항상심을 유지하는 건 좋은 투수가 지켜야 할 덕목인데요. 앞으로 김광현이 해결해야할 숙제라 생각합니다. 젊은 투수인 만큼 잘 이겨내리라 봅니다.
![]() 3월 7, 9일 양일간 벌어진 한-일전은 만원사례를 이뤘고 일본 내 TV 시청률은 45%를 넘었다. 야구 한-일전은 이제 두 나라의 경쟁을 대표하는 콘텐츠가 됐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WBC 2번째 한-일전이 주는 과제
김광현의 투구를 통해 한·일 야구의 인식차를 살펴봤는데요. 1차전 한국의 패배는 김광현의 투구말고도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도쿄돔이 원정경기라 불리했다는 말도 있더군요. 아무래도 일본의 홈경기이다보니 한국선수들이 위축됐을 가능성이 커요.
글쎄요. 제가 봤을 땐 일본의 부담이 더 컸을지 싶어요. 특히나 5명의 일본인 메이저리거들의 부담감이 심했을 겁니다. 한국은 늘 도쿄돔에서 국제대회를 치렀기에 부담은 심하지 않았을 거예요. 웬만한 선수들은 도쿄돔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지요.
9일 한-일전은 어떻게 보셨나요.
이기긴 했지만 어딘가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언뜻 한국이 쾌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칫 일본에게 질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주루 실패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잠시 복기를 해볼까요.
(서로 기록지를 보며)2회 1루 주자인 2번 정근우가 4번 김태균의 안타 때 3루를 노리다가 아웃 되고 김태균 또한 일본 포수 조지마 겐지의 견제에 걸려 아웃을 당했습니다. 7회 때는 주자 2, 3루 상황에서 이대호가 내야땅볼을 치는 사이에 김현수가 홈에서 아웃 되고 김태균이 무리해서 3루로 뛰다가 아웃을 당했습니다.
단순히 주루미스로만 보긴 힘든 문제인데요.
그렇습니다. 한국의 야구스타일은 공격적인 기동력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 성공과 실패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데 있습니다. 물론 자국리그에서 하는 ‘발을 방망이와 맞바꾸는 야구’를 국제대회에서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건 분명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9일 경기에서의 주루사는 모두 무모한 주루라고 해도 할말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2회 때 정근우의 3루 아웃은 후속타자가 중심타자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그렇지요. 경기의 흐름이 끊긴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주루와 무모한 주루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 보셨어요. 야구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주루사 덕분에 일본의 사기가 많이 올랐습니다. 한국의 투수진들이 끝까지 잘 던져 일본에게 반격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지요. 저는 9일 경기는 전적으로 한국 투수들이 열심히 싸워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 봉중근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봉중근은 얌전하게 공을 던지지 않았어요. WBC에서 가장 바랐던 투수상이었지요. 심판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정중하게 항의하면서 거칠게 경기를 운영했어요. 경기를 준비할 때도 남달랐어요. 불필요한 언행으로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더그아웃에 남아 일본 타자들의 배팅을 살펴봤어요. 메이저리그의 경험이 잘 표현된 경기였지요.
![]() 3월 9일 일본전에서 호투한 봉중근(사진 왼쪽)과 김인식 감독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WBC를 통해 본 한·일간의 차이
3월 3일 한국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평가전이 끝난 뒤 일본 언론에서 "한국 타자들이 몸쪽 공에 약하다"고 대서특필을 했습니다. WBC 본 경기 심판이 몸쪽 공에 야박한 메이저리그 심판들이고, 한국의 중심타자들이 몸쪽 공에 그렇게 약하지 않다는 걸 일본이 정말 몰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더군요.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일본 야구현장을 돌 때마다 과연 일본이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를 하는지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대호가 어떤 타자인지 모르는 일본야구 평론가도 있더군요.
일본 언론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일본의 스포츠 언론. 특히나 야구 언론입니다.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어쩌면 일본 야구팬들이 그렇기 때문에 보도하는 입장에서도 상대에게 관심을 갖기 보다는 자국 선수들의 취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재미난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지요. 옛날 노모 히데오가 LA 다저스에 입단해 돌풍을 일으킬 때의 일입니다. 상대가 뉴욕 양키즈이든 아니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든 일본 야구언론은 상대팀 타자들에 대해 거의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노모가 삼진으로 잡아냈다’ ‘오늘 노모의 탈삼진이 몇 개였다’ 등이 다였어요. 상대가 몇번 타자인지, 그 팀이 최하위인지 하는 것들은 관심에도 없었습니다.
과거 한국도 그랬습니다.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활약했을 때 많은 한국 야구팬들은 박찬호의 그날 승패가 궁금했지 경기상황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물론 박찬호의 다저스 동료들은 높은 관심을 받았지요.
불행히도 일본은 그마저도 없었습니다(웃음). 마이크 피아자 정도 관심을 받았을까요. 이 또한 그가 노모의 공을 받아주는 포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관심이었습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 20명이나 되는 일본인 선수들이 뛰고 있습니다. 일본의 평범한 야구팬들은 누가 어느 팀에 소속되어 있는지 모를 지경이 됐습니다. 야구언론 종사자들도 마찬가지에요.
야구언론 종사자들도요?
베이징올림픽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친한 일본기자들이 제게 하는 질문은 ‘이번에 출전하는 한국팀은 강합니까?’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강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거네요?’ 하는 게 고작입니다. 이는 일본 스포츠 언론의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대호의 저런 스윙으로는 일본의 투수들에게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라던가 ‘김광현의 낙차 큰 고속 슬라이더로 일본 타자들이 상당히 애를 먹을 것이다’라는 등 구체적으로 야구를 볼 줄 아는 기자들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일본 각 신문사마다 야구 기자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야구기자가 너무 많아 문제다….
![]() 한국, 타이완 야구 전문가인 기무라 고우이치 기자. 해박한 야구지식과 위트 넘치는 기사로 일본 내 독자가 많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듣고보니 한·일 야구의 차이가 야구언론의 보도 차이에서도 극명하게 나오는 듯합니다. 일본 야구팬들이 자국선수들에게만 관심이 있다면 한국 야구팬들은 되레 상대팀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WBC 기사 가운데도 상대팀 전력분석 기사가 많습니다. 하지만 야구만큼은 일본이 상대에 대한 분석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온 게 사실입니다.
ID(Input Data)야구' '현미경 야구'는 모두 데이터를 중시하는 일본의 분석야구를 일컫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본의 분석야구가 다소 느슨해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번 대회에선 아예 일본측의 분석야구가 김광현을 제외하곤 가동조차 못했다는 생각입니다만.
아마도 일본은 시간이 없다는 전제하에 베이징올림픽 때와 같은 전력 분석을 애초에 포기한 것 같아요. 코칭스태프가 확정된 시점 역시 오프시즌 중이었거든요.
베이징올림픽 때 일본의 전력분석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당시 상당히 많은 데이터를 수집했어요. 데이터 수집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지요. (쓴웃음을 지으며)그러나 결과는 4위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충분한 투자를 기피한 것 같아요. 일전 고지와 미야자키 대표팀 캠프에서 야마다 히사시 투수코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야마다 코치가 그러더군요.
뭐라고 하던가요.
애초부터 일본 코칭스태프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요. '이번 WBC는 자국리그 선수들을 급하게 뽑은데다 해외파 선수들까지 참가하게 됐다. 여기다 시기적인 문제까지 겹쳤다. 따라서 완벽한 팀을 구성하는데 집착하지 말자'고. 느슨했다기보다 포기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하지만 이는 결코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제한된 조건 속에서 준비를 하는 게 원래 일본 스타일이 아닌가 싶어요.
그건 또 무슨 뜻인가요.
일본인들은 무슨 일을 할 때 우선 도달점(목표)을 정합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주 사소한 부분부터 계산하고, 완벽하게 실행할 수 있을지 꼼꼼히 확인을 합니다. 야구를 포함해 거의 모든 일상에서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맹점이 있습니다.
융통성 혹은 위기대처능력의 부족을 말하는 것인가요.
네, 맞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 무척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이번 대회 공인구만도 해도 그래요. 이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투수들이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만 WBC 공인구가 NPB(일본야구기구) 공인구보다 다소 미끄러운 것만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투수들이 로진백을 많이 쓰게 되는데 일제 로진백은 WBC 본 대회에서 쓸 수가 없어요.
(기억을 더듬다가)1월이었다고 기억합니다만, WBC에서 쓰는 로진백을 미국에서 구해와 2월 대표팀 캠프에서부터 썼습니다. 오해하지 않길 바랍니다만 아마도 한국은 그렇게까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전 준비없이 뭐든 할 수 없는 일본에 반해 한국은 '일단 나가고 그 때 가서 생각을 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문제가 되는 부분도 많겠지만 국제대회에서 이기기 위해선 여러가지 돌출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위기대처능력과 적응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기무라 씨의 말은 일본이 완벽한 준비를 하지 않고 WBC에 임했기 때문에 다소 혼란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해가 가는데요.
9일 한-일전에서 봉중근의 투구를 보며 일본 전력분석팀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거나, 가동됐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능숙하진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날 봉중근은 속구와 느린 변화구를 섞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구속의 차이만큼이나 로케이션에 각별한 신경을 썼습니다. 국내리그보다 메이저리그 시절 때 던지던 공배합에 가까웠는데요.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자국리그보다 메이저리그 시절 공배합을 추구하는 건 상식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7일 김광현을 상기했는지 봉중근의 느린 변화구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고 경기 내내 봉중근의 페이스에 압도당했습니다.
보다 커다란 맥락에서 봤을 때 일본 대표팀엔 일본 언론만큼이나 '정보의 연속성'이 없습니다. 베이징올림픽 때 전력분석 담당을 누가 했는지 아십니까.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한신 타이거스의 시니어 디렉터로 있던 까닭에 한신 관계자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요미우리 전력분석원이 대표팀 전력분석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데이터의 인수인계가 있었느냐? 이 부분에 대해 확인해 봤습니다만 "없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숨을 토해내며)왜냐하면 잘 아시다시피 한신과 요미우리가 라이벌구단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야구 조직도 크며 인프라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습니다. 이는 한국 내 안티 일본분들조차 인정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부정적인 면도 많습니다. 반면 한국은 모든 것이 일본과 반대인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반대일까요.
일단 기자 수가 적지요(웃음). 대신 정보의 인수인계가 잘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을 겁니다. 대표팀 스태프도 연속성이 있습니다. 베이징올림픽과 WBC를 놓고 보지요. 대표팀 전력분석을 담당하는 유남호 씨와 김민호 코치는 두 대회를 모두 뛰고 있어요. 김인식 감독과 김성한 수석코치는 베이징올림픽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이전 국제대회 경험이 있고, KBO에서 국제대회를 연구했던 이들이에요. 야구의 승패가 선수들의 경기력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건 맞아요. 하지만 이처럼 경기 외적인 부분도 선수들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일본은 이점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야구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점
박동희 씨는 이번 WBC를 통해 일본야구를 어떻게 보셨나요.
음, 글쎄요. 경기 스타일만 놓고 본다면 정통 일본야구가 아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일본야구는 조직력의 야구, 기본의 야구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여기서 기본은 디팬스가 아닌가 싶어요. 실례로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지요. 미국과 일본 어린이에게 야구를 하라고 하면 미국 어린이는 배트를, 일본 어린이는 글러브를 들고 나간다는(웃음).
그런데 이번 WBC를 지켜보면서 일본야구가 색깔을 잃어버렸든지, 색깔이 더해졌는지 그도 아니면 색깔 자체가 없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음, 세 가지 뜻이 궁금하군요.
만약 과거 일본야구였다면 유격수는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아니라 가와사키 무네노리의 몫이 아니었을까요. '유격수는 공격보다는 역시 수비야'라는 생각이 강했을 테지요. 하지만 WBC 아시아라운드에서 가와사키의 출전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나카지마의 수비가 좋았던 까닭도 있겠지만요. 개인적으로 일본야구는 1990년 중반부터 메이저리그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본야구 본연의 색깔을 많이 잃었다고 봅니다.
각설하고, 색깔이 더해졌다는 건 앞에서 말씀드린 메이저리그와의 교류입니다. 메이저리그와 인적, 기술적 교류를 하며 일본야구 본연의 색깔에 메이저리그의 색깔이 더해진 게 아니냐는 것인데요. 실제로 일본야구 스타일이 전체적으로 메이저리그와 교집합을 이룰 때가 많습니다. 투수분업이라든가, 타자기용 등에서 그런 경향이 많이 나타나지요.
세번째 색깔 자체가 없어졌다는 건 9일 경기 8회 1사 1루에서 하라 감독이 나카지마에게 보내기 번트를 지시할 때 든 생각입니다. 1루 주자가 이치로라면 일단 병살 위험은 덜 한 셈이었어요. 게다가 나카지마는 이 타석 전까지 타율 5할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정규시즌에서도 주자 1루일 경우 95타수 38안타로 타율 4할을 기록했던 타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라 감독은 나카지마에게 번트를 지시해 2사 2루로 만들었습니다. 다음 타자 아오키를 믿은 건데요.
전 하라 감독이 지금껏 행한 수많은 작전 가운에 이날 작전이 가장 이성을 잃은 작전이었다고 봅니다. 그도 그럴 게 지난해 NPB 득점확률을 보면 1사 1루일 때 득점확률은 27.5%였습니다. 그러나 2사 2루 일 경우는 20%로 확 줄어들었지요. 이러한 수치는 놀랍게도 한국과 미국도 대동소이합니다. 하지만 하라 감독은 확률 20%에 집중하기보다 전날까지 아오키가 기록한 대회 타율 3할5푼을 믿었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좋지 않았습니다. 이건 자기가 결정한 선수를 끝까지 믿는다는 기무라 씨가 말한 일본 감독상도 아니고 확률을 중시하는 데이터 야구는 더욱 아닌, 그렇다고 메이저리그식의 강공야구도 아닌 국적불명의 희안한 야구였습니다.
그렇군요.
한가지 덧붙이자면 제 2회 WBC 미국팀을 지휘하는 데이브 존슨 감독이 "일본식 스몰야구를 차용하겠다"고 밝힌 반면 하라 감독은 빅볼 타선에 어정쩡한 스몰볼을 구사한다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요즘 일본에서는 WBC나 베이징올림픽과 같은 국제무대에서의 야구와 자국리그의 야구를 따로 생각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국제대회를 이기기 위한 야구를 모색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라 감독의 작전은…(웃음).
![]() 일본의 많은 야구평론가들은 2라운드엔 반드시 가와사키 무네노리가 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정된 수비가 일본야구의 본형이기 때문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한국, 세대교체 성공했다
일본은 메이저리거가 5명이나 합류했습니다. 한국은 추신수가 전부입니다. 경험으로 따져도 일본이 한 수 위인데요. 한국은 박찬호, 이승엽, 김동주 등이 빠지며 전력공백이 예상됐습니다. 리더십 문제도 걱정됐고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세대교체가 원할하게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두 나라 언론에서 보도했던 것만큼 한국의 전력이 약화됐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분명 이승엽, 박찬호 등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선수들’이 빠졌다는 건 크나큰 손실입니다. 하지만 순수한 전력만을 놓고 봤을 때 베테랑 선수들에 의존했던 초대 대회 때보다 오히려 2회 대회가 젊고 유망한 선수들로 구성돼 있어선지 훨씬 더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저는 야구를 볼 때 ‘이 상태인데도 진다면 어쩔 수 없지’라는 기준을 갖고 봅니다. 작전도 그렇고 전력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번 한국팀은 제가 느끼기에 ‘이 멤버로 진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동기부여는 이전 대회와 차이가 많습니다. 병역면제 카드가 없기 때문이지요. 반면 일본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애국심'을 동기부여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 야구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제가 느끼고 있던 것 이상으로 병역면제 혜택이 없어진 게 선수들에게 심리적으로 마이너스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김인식 감독 조차 그점을 아쉬움으로 토로하시더군요.
어쩌면 7일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콜드게임패를 당한 수모가 지난 번 대회 때의 ‘이치로 발언’처럼 선수들의 투지를 더욱 불태우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전화위복’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제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첫 경기 콜드게임패가 선수들의 능력치를 극대화시킨 요인이 됐다고 봅니다. 이번 대회가 중요한 이유는 우승청부사 이승엽이 부재하고, 1998년 방콕아시아겨경기대회 이후 병역면제 카드가 없는 유일한 국제대회라는 점입니다. 과연 한국이 두가지 악재를 딛고 좋은 성적을 내느냐가 관건인데요. 그렇게만 된다면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국 선수라는 이미지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9일 한국에 0-1로 패한 뒤 이날 선발 이와쿠마 히사시(사진 왼쪽)와 기자회견에 나온 하라 다쓰노리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아시아 야구와 WBC의 미래
우리의 대담 주제 가운데 아시아 야구의 미래가 있는데요. 박동희 씨의 생각을 먼저 들려주세요.
WBC 아시아라운드에서 중국이 타이완을 꺾었습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2번째 승리인데요. 일본에게 0-4로 졌지만 좋은 승부를 펼쳤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1승 1패를 주고 받았지요. 외형적 야구규모를 본다면 단연 일본>한국>타이완>중국 순입니다만 최근 국제대회 성적을 보면 한국>일본>중국>타이완입니다.
저는 이것을 두고 아시아 야구가 '평평'해졌다는 말을 씁니다. 각국 전력이 상당부분 평준화됐다는 뜻인데요. 아시아 야구의 평준화는 결국 미국과 중남미 야구에 견주는 아시아 야구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야구의 발전을 대단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어떤 지혜를 발휘해야 일본, 한국, 중국, 타이완 야구가 공존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4개국 프로팀의 왕중왕을 가리는 아시아시리즈가 5년 전에 시작됐습니다만 해를 거듭할수록 관심이 시들해 지고 있는 듯합니다. 흥행면에서 계속 유지해 나가기 힘들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각기 다른 입장과 이유들로 인해 4개국 모두 우호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현실도 고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나라의 프로리그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극복하는 게 관건입니다. ‘아시아 전체를 생각할 여유 따위 없다’는 것이 각국 야구계관계자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요.

타이완의 경우는 아시아시리즈를 위해 타이페이에 돔구장을 지을 예정입니다. 중국의 견제로 국제대회를 유치할 수 없는 타이완이 거의 유일하게 유치할 수 있는 국제대회이기 때문인데요. 만약 아시아시리즈가 사라진다면 아시아 야구강국끼리의 교류는 맥이 끊기고 맙니다. 이는 아시아 야구의 퇴보로 이어질 공산이 큰데요.
아시아시리즈와 관련해 저는 ‘보강 선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각국 프로리그 우승팀이 단독으로 참가하는 형식입니다만, 전년도 4위팀은 4명, 3위는 3명, 2위는 2명씩 다른 팀에서 선수를 보강시켜 참가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팀 전력도 올라가고 볼거리도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SK가 참가한다고 칩시다. 여기에 한화 류현진이나 두산 김동주가 가세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아시아 야구 미래에 대해 논의한 김에 WBC의 미래도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WBC는 한계가 명확한 대회입니다. 미 메이저리그의 초청대회이지 야구월드컵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우리가 메이저리그의 들러리냐"는 불만이 있습니다.
일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개최 시기부터 시작해서 경기 일정, 규정 등 지나치게 메이저리그 중심입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가 주최하는 이상, 뜯어고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잠시 생각하다가)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을 이기는 것이야 말로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반전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메이저리그나 WBC 조직위원회에서 “제3회 대회는 아시아에서, 도쿄돔에서 하자”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웃음).
그래요.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아시아 야구가 미국 야구를 제압한다.' 이것이야 말로 WBC를 가장 이상적인 대회로 만드는 가장 아시아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도쿄돔에 몰린 일본 야구팬들. 언제부터인가 일본의 최고 인기경기로 야구 A매치가 등장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아시아시리즈에 관해선 좋은 아이디어를 내셨습니다. WBC와 관련해선 다른 아이디어가 없으신가요.
있지요(웃음). 진정한 ‘세계최고’를 가리는 대회라고 하기엔 현 WBC 시스템은 지나치게 변수가 많아요. 개인적인 이상을 말하자면 우선 1라운드 지역예선을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가을께 실시하고 여기서 두 나라 정도가 올라간 뒤 3월에 리그전 형식으로 본선을 치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최종 4개 팀 정도가 확정되면 결승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리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인데요. 각국 야구인프라와 일정 등 현실적 제반 문제가 따르겠지만 아이디어는 좋은 듯합니다. 전 WBC가 본 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FIFA에 견줄만한 국제야구기구가 새로 설립하든 기존 IBAF가 강화되든 둘 중 하나는 실현이 되야 한다고 봅니다. 특정 국가의 야구기구가 세계야구를 관할하는 건 넌센스이니까요. 그런 뒤 진정한 야구 월드컵을 치르고 그 대회를 통해 세계에 야구를 전파하는 게 순서라고 봅니다.
그런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그러려면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미국 다음으로 야구에 많은 투자를 하는 곳이 일본입니다. 세계야구의 2대 빅마켓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요. WBC에도 NPB의 비중이나 일본 스폰서의 역할이 무척 큽니다. 그러나 일본은 자기 목소리가 별로 없는 듯합니다. 한국과 공조한다면 WBC를 더 알차게 발전시킬 수 있을 텐데요.
만약 일본이 WBC 룰과 대회운영이 공정치 않다고 판단해 대회 불참을 선언한다면 메이저리그의 고압적인 태도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일본은 ‘외교가 서툽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NPB가 진심으로 WBC를 발전시킬 마음이 있는지가 더 의문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제안을 했으니까 그냥 응한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왜 그럴까요.
‘국제대회보다 국내리그의 유지, 발전에 무게를 두고 싶다’는 게 NPB의 속마음이 아닐까요. NPB가 메이저리그의 제안에 마지못해 응했다면 그건 바로 일본이 ‘리얼 월드시리즈를 개최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시아시리즈를 착안해 낸 것도 아시아 최고를 결정짓는 대회에서 업적을 쌓음으로써 그 1위와 월드시리즈의 승자 간에 ‘리얼 월드시리즈’를 거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WBC를 통해 경제적인 면에서나 실력 면에서나 메이저리그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면 ‘리얼 월드시리즈’도 실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지요. 이러한 배경이 내포되어 있는 만큼 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메이저리그 이외의 나라, 특히 아시아 나라가 WBC에서 우승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 한국야구의 미래, 김태균(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WBC 2라운드 전망, '한국은 투수, 일본은 타선'이 관건
자, 애초에 기대한 대담보다 훨씬 자유롭게 의견이 개진되고 있는데요. 이제 WBC 2라운드를 전망해 보도록 하지요.
일본은 타선이 관건입니다. 얼마나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원래 상태대로 끌어 올릴 수 있느냐는 게 키포인트입니다. 한국은 일본에 1-0이라는 최고의 결과를 냈습니다. 관건은 그 분위기를 2라운드에서도 유지하는 것입니다. 베이징올림픽이었다면 오늘 쉬고, 다음 날 경기가 있어 페이스를 유지하기 쉬운데 이번 대회는 아리조나에서 훈련을 하는 등 다음 경기를 하는데까지 1주일정도 간격이 있습니다. 그 1주일이라는 시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도 아리조나 훈련기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은 하와이 캠프 때부터 투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황두성이 임태훈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투수들이 제 컨디션을 찾는 게 변수입니다. 류현진, 김광현 두 왼손 투수에게 의지하는 패턴에서도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봉중근처럼 미국야구 경험이 풍부한 투수나 윤석민처럼 다양한 변화구에 제구가 좋은 오른손 투수를 주요 경기마다 등판시키는 게 유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름값보다 현재 컨디션으로 선수를 기용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대호는 다소 수비가 처지더라도 공격력 강화를 위해 계속 경기에 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추신수는 아시아라운드 성적에 관계없이 꾸준히 기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요.
일본은 저 역시 타자들이 제 컨디션을 찾는 게 관건이라고 봅니다. 특히나 이치로, 후쿠도메 고이스케, 이와무라 아키노리, 조지마 겐지 등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상승세를 타야 일본팀이 살아난다고 보는데요. 그 가운데 후쿠도메의 부활이 가장 절실하지 않나 봅니다.
이번 대회에서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는데요. 아마 일본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 WBC 아시아라운드 내내 WBC 팀 닥터는 추신수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어쩌면 이것이 추신수가 부상을 당하지 않고 3경기를 무사히 뛴 이유인지 모른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어떤 꿈인가요. 궁금한데요.
일본과 한국이 WBC 결승에 올랐으면 좋겠어요. 2006년 WBC는 일정이나 대진 관계상 그같은 꿈이 실현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실현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두 나라에겐 좋은 일이겠지요. 어찌됐건 두 나라 가운데 한나라라도 자국야구는 물론이려니와 아시아 야구의 힘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까 박동희 씨와 의견을 같이 했지만 WBC를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레벨로 봐선 안됩니다. WBC는 어디까지나 각국의 야구스타들이 모인 야구의 축제이자 대형 이벤트입니다. 일본과 한국 야구팬들이 이 축제를 한껏 즐겼으면 합니다.
맞아요. WBC는 축전(祝典)이자 제전(祭典)입니다. 승리에 집착하지 말고 야구 자체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시에 한 목소리로) 우승은 어느 나라가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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