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불동(千佛洞)계곡은 철다리와 같은 시설물이 없을 때는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아주 험한 골짜기였다. 하지만 수려한 풍광과 뛰어난 대청봉 접근성 덕에 설악산의 많은 계곡 가운데 가장 먼저 개발된 곳이다. 천불동계곡은 초입부의 와선대와 비선대를 비롯해 문수담, 이호담,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 천당폭 등 많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토막골, 설악골, 잦은바위골 등 수려한 지계곡이 줄지어 이어지며 웅장함을 더한다.
천불동 등산로는 설악산에서 이용빈도가 가장 높다. 외설악에서 내설악이나 남설악으로 넘어갈 때, 혹은 그 반대로 대청 능선을 넘어 외설악으로 내려가는 등산객에게 가장 손쉬운 하산로가 된다. 현재 천불동계곡에는 많은 계단과 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게 산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좁고 가파른 곳이 많은 탓에 등산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성수기에는 지체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 ▲ 대청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에서 본 화채봉 능선과 동해바다.
- 소공원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40분쯤 걸어가면 와선대를 지나 비선대에 닿는다. 본격적인 천불동계곡의 시작지점인 비선대 주변은 고개를 치켜들고 우러러보아야 둘러볼 수 있는 웅장한 경관이 펼쳐진다. 널따란 반석에 와폭과 커다란 소가 형성돼 있고, 그 옆에 장군봉과 적벽 등이 솟아 있다. 삐죽삐죽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내는 천화대 암릉 또한 절경이다.
비선대 앞의 아치형 철다리를 건너면 길은 두로 나뉜다. 오른쪽은 금강굴 입구를 거쳐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왼쪽 길로 접어들면 곧 오른쪽으로 지계곡이 보인다. 토막골 입구다. 이후 천불동 계곡길을 따르면 여러 번 지계곡과 만나는 지점을 지난다. 설악골과 잦은바위골 입구를 지나는 도중 계곡 안에 보이는 넓고 깊은 소가 문수담과 이호담이다.
- ▲ 외설악의 화려한 암봉들이 내려다 보이는 소청 내리막길.
- 잦은바위골 입구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천불동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타난다. 건너편에 보이는 수직절벽이 병풍암이다. 이후 10분쯤 걸으면 골짜기가 좁아지며 길이 가팔라진다. 귀면암 안부로 올라서는 계단길이다. 귀면암 안부에서 산길은 계곡 바닥으로 내려섰다가 왼쪽 산사면을 타고 오른다. 이렇게 30분쯤 가면 또다시 칠선골 입구의 다리를 건넌다. 계속해 왼쪽 사면길을 따라 10여 분 걸어가면 골짜기 건너편에 용소골이 보인다. 천불동 계곡길은 이곳에서 90도 각도로 방향을 틀며 오련폭으로 이어진다.
- 와폭 5개가 연이어져 있는 오련폭 오른쪽 사면에 난 철다리를 통과해 다리 두 개를 건너면 양폭대피소 앞에 이른다. 양폭대피소는 전국 각지의 등산학교들이 겨울철 동계훈련 베이스캠프로 이용하는 곳이다. 주변에 폭포가 많고 사방이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악인들의 겨울 훈련장으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 ▲ 천불동 계곡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장군봉과 적벽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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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폭대피소를 지나 오른쪽으로 급하게 휘는 길을 따라 오르면 양폭이 보인다. 양폭과 천당폭 사이의 협곡에 놓인 철계단을 타고 폭포와 협곡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올라선다. 천당폭을 지나면 천불동은 수려한 계곡의 풍광이 사라지고 평범한 골짜기로 변한다. 죽음의계곡 갈림길부터 무너미고개까지 가파른 구간은 돌계단으로 미끄럽고 힘들다. 눈이 많이 쌓여 있다면 오히려 쉽게 통과할 수 있다.
무너미고개 고갯마루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희운각대피소로 이어진다. 희운각대피소에서 소청까지는 가파른 지능선을 타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외설악 일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대부분 계단이 설치되어 큰 어려움은 없다. 소청에서 중청까지도 이제는 거의가 계단이다.
- ▲ 장군봉 아래 치마바위 옆에서 천불동을 조망하고 있는 등산객.
- 중청 왼쪽 사면길로 중청대피소까지 이동하고, 대피소에서 대청까지는 날등을 타고 길이 나 있다.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50분, 비선대에서 양폭대피소까지 2시간, 양폭대피소에서 희운각대피소까지 1시간30분, 희운각에서 소청까지 2시간, 소청에서 대청까지 40분 정도 소요된다.
38년간 권금성산장 지켜온 韓山 종신회원
‘설악산 반달곰’ 유창서씨
“권금성산장은 소중한 추억의 장소랍니다”
- “속상해 죽겠어요. 38년 동안 내 집보다 더 소중하게 관리해온 산장을 비우고 나가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소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봉화대를 오르다 좌측 바위 위에 올라앉은 권금성산장을 찾아본 적이 있는 이라면 은은한 향을 내는 커피와 털보 산장지기 유창서씨(劉昌瑞·72)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베레모를 쓰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이 영락없는 반달곰을 연상케 해 설악산 반달곰으로 통하는 유창서씨는 요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유씨가 71년 이후 38년간 임대관리해온 권금성산장을 철거 후 다시 짓겠다며 설악산 공원관리소측에서 나가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단의 명도소송에서 패소한 이후 강릉지방법원에 재심을 요청해놓은 상황이다.
“저로서는 전기와 물을 끌어들이고 도색을 하는 등, 관리에 최선을 다해왔어요. 다 떠나서 관광객들에게까지도 추억의 장소입니다. 산악인들에게는 그 어떤 유적 못지않게 소중한 곳이고요. 그런 건축물을 굳이 허물고, 세금을 들여 다시 지을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낡았다는 게 이유라면 불국사 석굴암도 다 없애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도봉산장을 관리하다 94년 사망한 유용서씨의 동생이기도 한 유창서씨는 산장을 찾은 이들이 메모판에 써놓은 글을 모아 <산장에 남긴 사연들> 등 두 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배재고 산악부와 에코클럽, 동국대 산악부 등 전통 있는 산악회 회원이자 한국산악회 종신회원인 유창서씨가 설악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꽤 오래 되었다. 대학시절 클라이머로서 명성을 떨쳤던 그는 1969년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 사고를 당한 10동지 사고 수습차 설악산에 들어섰다가 아예 설악산에 뿌리를 내렸다. 설악산 적십자구조대도 그가 창립하고, 초대 대장을 맡았다.
“권금성산장터도 이기섭 박사께서 저와 함께 찾아낸 거예요. 아무튼 젊은 날엔 물불 안 가리고 구조작업에 나섰어요. 화채릉뿐 아니라 산 어디든 조난 소식이 전해지면 뛰어 갔으니까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지 못할까봐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 허리도 다치고 관절마다 고장이 나 지금 이렇게 몸이 좋지 않은 거예요.”
유창서씨는 “전임 관리소장이 있을 수 있을 때까지 있으라고 해 마음 놓고 지냈는데 소장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집기 값 몇 백만 원 주며 나가라는 게 말이 되냐?”며 다시 한 번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한>
- 와폭 5개가 연이어져 있는 오련폭 오른쪽 사면에 난 철다리를 통과해 다리 두 개를 건너면 양폭대피소 앞에 이른다. 양폭대피소는 전국 각지의 등산학교들이 겨울철 동계훈련 베이스캠프로 이용하는 곳이다. 주변에 폭포가 많고 사방이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악인들의 겨울 훈련장으로 안성맞춤인 곳이다.